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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 영국 최고 법정신의학자의 26년간 현장 기록
리처드 테일러 지음, 공민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땐 ‘직설’에 살짝 놀랐다. 책커버가 없다면 혼자서 읽어야할 듯. 그런데 며칠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엔 사람을 죽이고 죽인 사람 또 죽이는 이들도 있(많)다. 빈소에 자사 빵 가져다 놓은 SPC 행태에 분노와 소름. 유족분들...
‘잭 더 리퍼’와 사립탐정들의 인기(?)로 잔혹범죄나 연쇄살인과 관련해 영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저자도 영국인 법정신의학자다. 연구 주제는 ‘살인자의 범행 동기와 심리 분석’이며, 26년간 현장에서 100여 건 이상 강력 범죄를 수사하였다.
실화라서 더 생생한 충격일 듯도 했다. “왜 죽이는가...” 정말 궁금하고 이유라도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질문이다. 설사 살인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해도.
“살인은 단순한 범죄가 아닌, 세계 공중 보건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살해당한 피해자의 수는 전 세계 46만 4천 명으로 매일 1천 건 이상의 사건이 일어났다. 테러 피해자만 2만 6천 명에 이른다. 계획범죄로 살해당한 여성의 수는 8만 7천 명, 그중 5만 명은 애인이나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짐작보다 더 많다는 기록, 어쩌면 누락도 상당할 거란 의심... 왜?
“화, 분노, 충동, 두려움, 질투와 같은 '평범한' 혹은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의 극한에 도달했을 때 주로 일어나지만 사건 당시 이런 감정 상태와 정신병 사이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 정신 이상으로 벌어진 살인의 경우 일반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버린다. 살인자는 현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망상과 환각 상태에 들어선다.”
어느 정도라야 ‘이상’으로 진단을 받는지, 살인을 행할 정도의 극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이들도 ‘이상’이 아닐 수 있는지, 나는 늘 이 지점에서 혼란스럽다. 다들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이탈한 ‘이상’ 상태가 아닌가. 아무리 멀쩡한 척 연기를 하더라도.
물론 이건 비전문가인 나의 분노가 주장하는 바임을 알지만, 저자가 가해자들을 살피고 질환이 발견된 이들을 치료하였다고 하는데, 여전히 내게는 부글부글 의문이 남는다. 질환이 아님에도 살해한 가해자는 뭔가. 일시적 ‘이상’?
- 강간(성폭력) 살해
- 정신 이상자(진단/발견된)의 살해
- 존속 살해
- 영아 살해
- 자식 살해
- 애인(성별 불문) 살해
- 알코올 중독 등 뇌손상으로 인한 살해
- 살해 당시 기억 상실
- 절도 살해
- 폭력적인 극단주의/테러에 의한 살해
- 대량 학살 등등
잊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살해들도 떠오른다. 선천적인 것도 후천적인 것도 아니며, 복합적으로 받은 영향이 살인자를 만든다고 한다. 특히 지속적인 학대가 성장배경에서 뚜렷하게 발견된다고.
그러니 범죄는 ‘누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를 물어야 한다.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책은 ‘왜’를 알아야 만들 수 있다. 모색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접근은 있어야 할 것이다.
“가끔은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살인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를 치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응급실에서 수련의로 생활하는 동안 칼에 찔린 피해자를 치료하면서 법정신의학의 길로 들어섰다. (...) 인간이 인간을, ‘왜’ 공격하고, 해치고, 살해하는가?’ 저자 소개의 일부이다. 이 책을 통해 본 법정신의학자의 일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