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는 얼굴들 -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
이사 레슈코 지음, 김민주 옮김 / 가망서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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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온통 강렬할 줄 알았는데

열 몇 살, 스물 몇 살, 서른 몇 살... 이라고

사진 밑에 동물들 나이가 적힌 것을 보다 눈물이 막 흘렀다.

 

동물은 인간의 식재료가 아니다.

부드럽고 졸깃하고 마블링이 현란하고 육즙이 흐르는

고기 상품들이 아니다.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고 수명을 누리다 죽는 생명이다.

내게는 자명한 이 사실이... 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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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작가님의 추천사를 어제도 오늘도 읽는다

 

타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그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타자의 나이든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그가 지나온 세월을 감각하는 일이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고기 앞에 동물의 얼굴이 붙어 있다면, 또는 구스다운 이불 위에 동물의 얼굴이 붙어 있다면, 우리는 얼굴이 표상하는 고유성 때문에 제품을 소비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망설일 것이다. 잔혹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우리는 동물로부터 얼굴을 가장 먼저 빼앗아야 했는지 모른다. 나이 든 생추어리 동물의 초상을 담은 이사 레슈코의 작업은, 그러므로 인간 중심 사회가 제거한 얼굴의 복원이다. 또한 이 작품들은 고통과 폭력으로부터 극적으로 구조되어 노년을 맞이한 동물이 흔치 않은 존재임을 환기시키기에, 역설적으로 늙을 수 없는 대다수 동물의 보지 못한얼굴을 보게 한다’.

 

폴란드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모든 인간은 나치라고 말했다. 동물에게는 거대한 아우슈비츠나 다름없는 이 세계에서, 동물의 늙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 불가능한 것, 기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 담긴 얼굴들은 말한다. 동물에게 노년을, 나이 듦을 허하라고. 이제는 우리가 그 목소리에 응답할 차례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고통은 얼마나 줄었을까.

 

차마 읽을 용기가 없어서 한참을 힘을 그러모아 펼쳤던 책이다.

얼마나 울었는지는 울다가 잊었다.

이유는... 복잡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만한 고통을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써주시고

쉽지 않은 강연과 대화를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하재영 작가님 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떤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덕을 보증하는 알리바이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약자의 연대자인 동시에 또다른 약자가 당하는 폭력의 방관자이자 심지어 가담자일 수 있다. 그리고 동물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거의 항상, 그렇다.”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재고하기보단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모순을 찾아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싶어한다. 동물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평범했던 일상이 딜레마로 전환되는 일이다. 나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외부의 적이 아닌 스스로의 모순과 싸우는 일이다.”

 

초창기 보호소가 보호라는 말과 전혀 무관했던 것처럼 여전히 어떤 현실은 언어 뒤에 가려져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언어는 모든 것이 괜찮다는 낙관주의를 심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자연사, 안락사, 입양은 보호소의 현황을 설명할 때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언어다. 각각의 언어에서는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언어를 사용할 때 마침표와 물음표를 함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실태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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