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평점 :
읽기 어렵지도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오래 나눠 읽자는 계획이 필요 없게 될 정도로 일독은 빨랐다. 그런데 생각이 많아져서 글은 쓰지 못했다. 이 글은 그동안의 생각들을 정리한 담담한 기록이고자 한다. 부디 하소연이 더 많지 않기를 바라며 썼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가족이 있다. 그 전에는 장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았다. 16년 전에 시작된 새로운 삶은 다중우주 저리가라 할 정도로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장애의 종류는 비장애인이 짐작하는 것보다 다양하다. 종류가 같아도 중증 정도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뇌병변 장애에 대해서만 알 뿐 자폐스펙트럼에 대해선 모른다. 발달 장애 전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실은 다른 모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도 적용되는 역사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장애 ‘종류’라 하더라도 모든 이야기를 경험한 것처럼 익숙하게, 오래된 아픔까지 떠올리며 읽게 된다. 소수여서 약자이고 약해서 소수인 모두의 경험이라서.
북클럽 덕분에 여러 이유로 읽게 될 것 같지 않던 책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1930년대 자폐 개념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지금은 당시의 무지와 차별을 열심히 극복하고 자폐가 인간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과정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 속에서 배웠다.
“얘가 왜 그러냐구? 얘는 자폐인이요. 이제 당신들이 왜 그러는지 말해봐요. 아니면 입 닥치고 조용히 가든지.”
무지했으니 나도 자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배워서 알고 나니 시시한 그 벽이 조용히 사라진다. 어떤 장애도 특정인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고 치료 가능하지도 않다. 오래 전 모르고 본 영화 <레인 맨>의 결말이 무척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눈부신 표지가... 감추고 격리시키던 암습한 시절을 꺼내어 볕 좋은 날 잘 말린 자폐의 역사처럼 찬란하다. 자폐인들, 권리 옹호 활동가들, 의사들, 과학자들... 모두가 영웅들이다. “신경다양성을 인정하라!” 이제 배운 이 표현을 현장의 힘찬 고함으로 듣는다.
살던 대로 있는 그대로가 숨 쉬는 공기처럼 편하기만 하다면, 기득권자이거나 기득권의 삶만을 경험한 것이다.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불편하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길 부탁한다. 그 이야기에 이해를 넓히고 낡아버린 사유의 경계를 늘리는 지혜와 힘이 있다.
세상의 돈키호테들, 이상주의자들이 좋다. 이 책을 저술하고 번역하고 출간한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더 늦지 않게 읽을 수 있어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알던 그리고 모르는...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 애쓰다 삶을 끝낸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