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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김훈 작가께서 오랜 시간을 들여 깊이 이해해나간 ‘인간 안중근’을 술술 잘 읽을 수 있도록 창작해주셔서 안타까울 만큼 빨리 읽었다. 간결하고 담담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장으로 잘 알던 사람처럼 내밀하고 생생히 전해주는 신력의 작품이다.
일반명사였던 안중근은 이제 만난 적 있는 사람으로 가까워졌다. 영웅의 자리에 선 이를 한참 더 산 흐린 눈으로 바라보니 아프기만 하다. 서른 한 살의 생각... 그의 가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런 비극을 가해한 자들은 기필코 제대로 벌을 받아야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일이 있을까, 살면서 상상조차 못해봤다. 즉각적 거부가 일어났지만, 작가께서 이토를 잘 이해해보라고 그리 구성하실 리가 없으니, “이 놈 어디 네 속을 살펴보자”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안중근이 청년이자 순수함이자 열정을 가진 존재 자체라면, 이토는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대리인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의 확신과 사유없음과는 대조적으로, 안중근에게는 발걸음마다 부딪치는 갈등이 나타난다.
대의가 의도였지만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 고민, 한 인간으로 적에게 보이는 증오심과 천주교인으로서 지키고 싶은 신앙심. 작가는 안중근을 진짜로 살려 내기 위해서 기록처럼 보일 요소 대신 복잡한 갈등을 겪는 실재 인물로 창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중근이 잠들지 못하는 잠자리에 누워있는 짧은 순간에도, 강렬하게 그가 느끼는 긴장감과 갈등을 강렬하게 공감할 수 있다. 다지고 다졌을 그의 결단은 우연을 감지한 불안 속에서도 성공시켜야할 종교적 신념처럼 전율스럽다.
‘즉시 마음을 정하다’는 표현에 마음이 거세게 뛰었다. 불안하고 슬프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원망스럽고, 이 시절을 걸어 나와 이룬 나라꼴이 기막히고. 책을 덮고 누운 내 잠자리에서 나도 갖가지 복합적인 갈등과 증오심과 고민들이 한가득 지나갔다.
“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은 엷게 얼굴에 번졌다. (...)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웃음은 흐렸고 소리 끝이 어둠에 스몄다.”
이전에 청소년 문학을 읽다 보면 직설적인 단문이 좋을 때가 많았다. 둘러말하는 능력을 키운 어른들의 이도저도 아닌 소리에 질린 경우라면 더 그렇다. 김훈 작가의 문장들과 안중근 우덕순의 답변들이 간결하고 정확해서, 변명과 조작의 여지마저 남기지 않는다. 옳다는 일에 목숨을 건 청년들의 언어가 거침없음 외에 뭐가 될까.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결심 하나로 되는 일이다.”
청년들의 외로운 단신 고투, 그 변화 이후에도 이어진 참극, 후일담을 읽고 읽는 후손인 내가 보는 후일인 작금의 풍경이 대체로 암담하다. 김훈 작가는 감정적인 요소 없이 담백하게 문장을 이어나가셨고 나는 내내 절통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날인 1909년 10월 26일의 생생한 풍경을 신문으로 재구성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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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책첵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