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8월 15일 77주년 광복절에 처음 펼쳤다가
경축하기 싫은 건지 화내고 고함을 지르는
자유 오용자 소식에 질려서 얼마 못 읽었다.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다시 읽기로 했다.
을사오적 : 이완용, 박제순, 권중현, 이근택, 이지용
정미칠적 : 이완용, 고영희, 이병무, 조중응, 송병준, 이재곤, 임선준,
경술국적 : 이완용, 고영희, 이병무, 조중응, 박제순, 민병석, 윤덕영, 조민희
역사에 ‘적’으로 분류되어 이름을 남긴 이들을 기억하며
이완용 증손자가 국립대 총장도 하고
문화재청장도 하는 광복 대한민국에서...
“코리아 후라~”
김훈 작가님처럼 감정 절제하고 담담하게
끝까지 끈질기게 읽어보려 했다.
오늘은 꼭 우덕순을 만나 뵙고 싶었다.
.
.
화자도 여럿, 시점도 여럿이다.
말로 발화된 뜻보다 삼킨 말이 더 많은 것도,
텍스트로 다큐를 보여주는 김훈 작가의 필력에 맞춤하여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 말했다. 동북아와 구미열강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안중근에게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 년 앞을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충고는 간곡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토가 죽지 않고 병원으로 실려 가서 살아났다면, 이토의 세상은 더욱 사나워지겠구나. 이토가 죽지 않았다면 이토를 쏜 이유에 대해서 이토에게 말할 자리가 있을까. 세 발은 정확히 들어갔는데, 이토는 죽었는가. 살아나는 중인가. 죽어가는 중인가.”
“안중근은 용수를 벗은 눈으로 우덕순을 바라보았다. 우덕순도 안중근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안중근은 우덕순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메마른 눈동자가 버스럭거리는 듯싶었다.”
.
.
“두려움은 못 느끼듯이 느끼게 해야만 흠뻑 젖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농장기를 들고, 꽹과리를 치고,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펄럭였지만 조선의 폭민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어섰고 한 고을이 무너지면 이웃 마을이 또 일어섰다. 기생과 거지까지 대열에 합세했다.”
“병력 증파를 요청해야겠다고 이토는 결심했다. 미개한 군중을 제압하려면 경찰보다는 군대를 써야 하고 일시에 맷돌처럼 갈아버리는 방법이 좋다고 하세가와는 늘 이토에게 말했다.”
.
.
“조선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누린 기간은 이제 겨우 이십 년이었다. 자유는 뿌리내리지 못해서 위태로웠다. 교회는 세속을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과 부딪치게 되는 사태를 피해가려 했다.”
올 해 2월 7일에 읽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기억났다.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이 빌렘에게 하는 고해성사로 마무리가 된다.
이 작품에서도 그 장면이 무척 인상 깊은 침묵으로 표현된다.
필사와 단상만 일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