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손민지 지음 / 디귿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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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시민 10km 달리기에 친구와 지원해서 달려보았다. 학교 체육 시간의 오래달리기로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리 잘 달리는 분들이 많은 세상인 줄 덕분에 배웠다. 겨우 완주는 했다. 하프나 풀코스 마라톤에 대한 경외가 엄청나게 커졌다.

 

대학입시가 본격화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스포츠 활동뿐만 아니라 예체능 전반에 대한 참여시간이 줄고 자제당하기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대신 가끔 아주 오래 걸었다. 대학/대학원 시절은 가장 바빴던 시절로 기억한다. 매일하는 운동 대신 가끔 등산을 다녔다.

 

유학 가서 우연히 태권도 유단자를 알게 되어 뒤늦게 조금 배우다가 말았다. 걷기 명상을 배워 가능한 자주 걷긴 했다. 차라리 매일 달리는 습관이 굳건했다면 오랜 세월 체력을 잘 채웠겠다 싶은 아쉬운 생각은 종종 들었다.

 

불쾌한 말이 나를 할퀴는 날에는 그 기분 속에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무조건 한번 달리고 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기분에서 벗어난 스스로가 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고는 깨닫게 된다. 내 기분을 결정할 사람은 나여야만 한다는 것을.”

 

귀국해서 출퇴근하면서 루틴을 만들었다. 6시에 운동센터에 가서 20분을 기계 위에서 달리고 다른 운동 좀 하다 샤워하고 아침 사서 출근하는 일. 달리기 시작할 때마다 이걸 왜 하나 싶게 괴로워지다 그 순간이 지나면 내려오고 싶지 않은 러너스 하이를 맛보는 반복이었다.

 

나는 언제고 나와 함께 붙어 있는데, 함께 있는 나 스스로를 좋아하지 못해서 그렇게 타인을 찾아 다녔는지도 모른다. (...) 기꺼이 혼자가 되기 위해 달리러 나간다.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절실히 돕고 싶어진다.”

 

그리고 슬슬 게을러지다 판데믹으로 적어도 운동 일상은 다 무너졌다. 마스크를 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은 적어도 내 정신 건강에 아주 유해했다. 마스크를 벗어 박박 찢거나 분노를 표출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파트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내리는 일도 지겹고 이젠 산책만 종종 한다. 아주 말랑한 몸이 되었다.

 

어설픈 뜀박질이 남은 생을 구원했다는 저자의 글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걷고 뛰면 몸을 바로 세우고 자세를 찾게 된다. 시선도 달라진다. 당연히 체력도 달라진다. 근육이 하는 일에 비하면 청순가련 우유빛깔 따위는 삶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운동복을 입고 달릴 때마다 나는 점점 진짜 에 가까워진다. 내 몸은 예쁘게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잘 달리기 위해’,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해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갖게 되고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은 귀하다. 인류 문명은 지금도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연대하는 방법도 알려 줄 것이다. 적어도 외모를 품평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 더 작고 약한 몸을 가진 다른 생명들에게 친절하고 싶어질 테니까.

 

노랑이가 그리워질 때마다 나 또한 아주 작은 원자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나도 죽어서 사라질 것이고, 우리 둘 다 똑같이 원자 단위로 흩어져 또다시 먼 여행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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