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두를 신고 간다
이선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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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먼 곳의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원래도 단정하고 단단하고 모든 일을 그렇게 해치우는 친구인데 그렇다고 힘이 안 들어 그렇게 사는 건 아닐 것이다.

 

몇 해 전에 혼잣말처럼 나는 늙어도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출근할 거야.”라고 하는데... 다른 생각은 안 하고 응원만 하고 싶었다그건 구두가 좋다거나 패션에 목숨을 건다는 게 아니라결심이 정신이 몸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불안과 결심을 섞은 다짐처럼 들렸다.

 

표지의 구두처럼 높고 얇은 굽을 신고 걸은 적은 없다. 3-5cm를 오가는 구두조차 고관절이 자꾸 틀어지고 빠지기도 하면서 다리 길이가 달라지는 몸 상태로 신지 않은지가 오래다.

 

의사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한 쪽으로 매거나 드는 가방 말고 배낭구두 말고 걷기 기능성 운동화몸의 균형을 무너뜨릴 착장을 하지 말 것.

 

그전에도 건강과 멋을 교환하는 용감한 유형은 아니었는데의사 공식(?) 진단도 있겠다마음 편히 운동화와 배낭 패션으로 살아왔다.

 

화장도 헤어스타일링도 안 하고 옷과 가방과 신발도 기능성으로 바뀌니 새파랗게 젊은(?) 이들이 반발을 하는 사태가 생긴다한번은 무례가 지나쳐 욱하려는데 함께 있던 친구가 원피스운동화배낭’ 조합 탓을 하며 덥석 말려 주었다.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엄마인 것이 여전히 낯설고 버겁다고 한다신화적인 모성애를 가진 이들보다 실은 저자와 공감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선입견을 가지고 읽을 생각은 아니지만발달 장애를 가진 어린이의 보호자와 양육자로서의 이야기고 궁금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았고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나처럼 아래층이 참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며나의 배려와 애씀이 존중받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괴로움 때문임을 알았다. (...) 그리고 나의 참음과 배려를 그들에게서 돌려받으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도 자주 그렇다화가 나는데 잘 살펴보면 뭔가 억울해하는 거다그건 내가 타인들에게 미리 동의와 합의를 구하지도 않은 일에 멋대로 기대를 투영하고이런 건 사회적 합의가 된 거 아니었냐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다그건 그냥 나의 믿음이다내 사회적 관계 내에서나 가능한 일들이다그리고 그 경계는 내 애정보다 둘레가 작다.


 

이 에세이의 좋은 점은 너우리의 구분을 흐리게 한다는 점이다대부분의 시간대부분의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왔다평범한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 것이라 기대하고그렇기에 그 평범이라는 것이 사회의 정상성에 들어맞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괴리와 괴로움이 찾아온다.


 

너무 자주 언급하지만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탈한 일상이 이어지게 하는 일이고그걸 무너뜨리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방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격렬한 노동이고 공무이고 정치이고 외교이다일상의 생존을 도모하기위한 최적의 환경인 것이다.


 

저자도 젊고 어여쁜 20대를 살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며대신 아파줄 수 없는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무너지는 몸도 정신도 얼른 추슬러야 하고 아픈 것도 견디고 아물어야 한다저자에게 구두가 아이와 함께 걸어갈 힘이 되어 준다면 구두에게도 힘찬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드라마 주인공이 인기라는데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그 드라마 세상이 좋아 보인다면우리의 현실도 닮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가족으로이웃으로동료 시민으로 그렇게 평범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 정도의 사회로.

 

구두를 신고 쉽지 않은 걸음을 옮기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무탈하시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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