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팝의 고고학 1990 - 상상과 우상 한국 팝의 고고학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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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로 넘어오자, 나도 실시간(?)으로 듣고 보았던 음악과 음악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전에는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추억을 찾아가는 즐거운 기록 찾기 같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정서는 애써봐도 돌아오진 않지만 기억이 남아 다행이다.

 

90년대는 참 복잡하고 혼재된 시절이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그런 특징들이 보였다. 대학 역시 최루탄 연기가 줄고, 학생 모임들은 이름조차 바뀌고 있었다. 나는 딱히 해당되는 일을 한 것도 없지만 X-세대와 낑깡, 오렌지 등으로 불렸다.

 

저자들이 90년대는 모든 것이 엎질러져서 경계를 넘어 흘러 다닌다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대라고 해서 정말 적확해서 웃음이 났다. 경계 넘기와 파괴는 학계에도 일상에도 다른 분야들에서도 파급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주 많은 것에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미처 이전의 문화와 학문을 다 배우지 못한 나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내다 버리는 것들이 아깝기도 했다. 세기말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들이 가득했던 요란한 시절... 그때 나도 기운이 꽤 있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자유롭고 싶다던 개성을 찾고 싶다면 이들이 산업에서 생산한 문화 상품에 열광하는 현상이었다. 그들은 다른 한편 어딘가에 단단하게 소속되고 싶어했고, 구심점을 찾은 이들은 팬클럽을 만들어 개성이라곤 없는 단체활동에 열광했다.

 

아이돌이란 단어가 이때 탄생했던가. 부제의 상상과 우상이 명료해진다. 나 역시 신해철과 넥스트를 아주 좋아했다. 그들의 밴드 음악과 실험적인(?) 사운드에 떨렸고 설렜다. 감각적이고 의식 있는 예술가란 무척 매력적이다.

 

서태지는 좋아지지 않았고 그가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것도 조금은 별로다.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전까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힙합이라는 장르다. 어쩌면 나는 윤미래에게 그저 반했던 것일 수도. 혹은 사랑하네, 헤어졌네, 어쩌구가 너무 지겨워져서.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크라잉 넛 노래를 크게 부르는 건 무척 신났다. 어쨌든 속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풀기보단 제대로 할 말을 하고 사는 편이 나았으려나... 콘서트에 가기 시작한 것도 90년대이고 무척이나 즐거웠다. 공연예술의 위용이 대단했다.

 

읽고 쓰다 보니 이 시절의 예술가들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 문득 서운하고 문득 서럽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나는 21세기가 되기 전에 유학을 떠났다. 시리즈도 일단락되었고, 나의 한국 팝 경험도 일단 멈췄다.

 

매권마다 어쩌면 했을 지도 모를 말이지만, 한국 팝에 관해서 정독하고 공부하고 흐름을 살펴보려면 이 시리즈만한 다른 책들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매번 한 권에 10년씩을 다 담아준 것에 놀라고 감탄한다.

 

쉬운 작업이 아닐 테지만 나는 모르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팝에 대해서도 언젠가 출간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모든 책이 반가운 역사이고 귀한 자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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