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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 -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이민경 지음 / 진풍경 / 2022년 7월
평점 :
읽는 중
“바라는 것 없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믿음. 우리 생활에도 이런 빈 시간이 있어야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그래도 좋다'는 만족감으로 치환 될 수 있지 않을까.”
정확히 숫자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트렌드와 유행을 따라하거나 민감하거나 혹은 은밀히 원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나이가 있긴 하다. 물론 다 그럴 거란 생각은 안 한다.
그건 고급스러운 취향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 지나온 길이 멀수록 살아온 존재로서의 ‘나’가 좀 더 분명해지고, ‘나의’ 것을 가진 구체적이고 독자적인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휩쓸리지 않고도 태연하고, 선명하지 않은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취향은 세계관이기도 하다. 지식도 지성도 감각도 감상능력도 필요하고, 그 과정은 시행착오 외에는 없을지 모른다.
한 분야에서 일하며 소모되지 않고 쌓아올린 저자의 시선과 글은 그런 느낌을 준다. 부럽고 부럽지만, 책에 담아서 내게 도착해준 것이 그저 감사하다.
이 책에는 트렌드 대신 공간 마다 다른 향취가 느껴지는 맑은 공기 같은 취향이 정갈하다. 찬사와 동경이 아닌 바라봄과 존중과 예의가 있다. 깊이가 느껴진다.
나만의 취향이 있다는 건 참 우아한 일이다.
“사실 도쿄에 산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지진에 늘 마음 편히 잘 수 없다는 뜻이고, 때론 한낮의 쥐 죽은 듯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일본인들의 외로움과 자발적 소외, 서슬 퍼런 개인주의 현장을 목도하고는 덩달아 도시에 밴 무기력한 슬픔에 침잠하는 것이기도 했다.”
휴가 첫 날을 이 책과 함께 하기로 한 선택에 스스로 감동하는 중이다. 어쩌다 무척 운이 좋은 날이 없지는 않다는 위로...
책을 펼쳐 읽고 보다... 둥실 떠오르는 오랜 기억과 사람들이 선명해지면, 잠시 책을 놓고 남은 기록들을 뒤져본다.
발굴하듯 무언가 찾아내기도 하고, 그저 뒤적거리는 동안에 기억 속에서 먼저 찾아낸 풍경들이 선명해서 왈칵 그리워지기도 한다.
영국에서 만난 일본인 동기, 내가 일어를 배우는 속도보다 더 빨리 한국어를 배워서, 먼저 말을 걸고 노래도 불러주던 다정한 친구, 직접 구운 빵을 선물해주던 눈물이 많던 다른 친구, 전공이 같아 늘 대화가 즐겁던... 도쿄로 돌아가서 다니던 대기업 사표 쓰고 농사짓기로 한 또 다른 친구, 동일본지진 당시 돌 지난 딸을 키우던 오랜 친구... 손편지로 초대장을 써서 초대해주시던, 친절하고 다정했던 친구들의 부모님들, 맛있는 것들을 자꾸만 먹여 주시던 동네 분들... 아주 운이 좋아서 내가 경험한 시간들은 온통 다정함과 사랑과 친절과 그리움이다.
과거의 폭력을 덜어내지 못하고 현대에 새롭게 더하는 양국의 관계가 늘 서글프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권력도 이득도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속상한 일이다.
언론이란 늘 불행에 관심이 크고 과장에 능력이 출중하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에 태연하기란 참 힘이 든다. 부디 모두가 조금씩 덜 힘든 세상으로 변해가길... 책 속의 풍경들이 곱고 정성스러워서 망연하게 간절하게 이런저런 바람을 멀리 보내본다. 무력함에 지지 말기...
[술이 술술 당길 때] 소제목에 홀려서 술 찾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