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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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로운 에디션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핑계로 다시 읽고 싶어지는 글들,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작가님이시다. 작년 여우눈 에디션에 이어, 올 해 여름에는 모래알이 물 빛 윤슬이 된 듯 영롱하고 그리운 아름다운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올 해도 박완서 작가님의 문장들은 여전히 가차 없이 정직하고 진실하다. 작년에 한 결심을, 따라 해보겠다한 생각을 따라 살지 못했으니 다시 읽고 다시 한 발만 가까이 가도록 무진 애를 써봐야겠다. 어느새 또 잊고 살게 될 지라도.

 

부자가 못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미래가 없는 최초의 세대가 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을 희망도 기대도 없이 망가지고 죽어나가는 풍경만 바라보며 살게 되는 것인가, 종종 그런 무서운 생각도 든다.

 

몰라서 바꾸지 못한 시기가 지나면 희망이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알아도 바꾸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희망 대신 절망이라도 정확히 해야 제 정신으로 버틸 시간이 늘 것 같다.

 

글 속의 우리는 일제 식민지도 한국 전쟁도 독재도 군사정권도 살아남았다. 이만한 정치, 경제, 국사, 사회, 일상을 만들었다. 혹시 내 절망이 틀리고 이 시절도 살아남아 옛 이야기하며 살아가게 될까.

 

박완서 작가의 어머님의 삶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저런 결단도 노력도 없었다는 것이 늘 부끄럽다. 그래도 그만큼 애쓰며 살지는 못할 인간이다, 나는.

 

작년 겨울에도 다른 신들 대신 이 문장을 믿고 싶었다. 지금은 더 간절하다.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우리 모두의 모든 선택과 노력이 모여 마치... 시간이 해결한 듯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까.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거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짜증도 늘고 화도 늘었다. 작가가 되지는 못하지만 작가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는 일이 지금 내게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다시 표지를 본다. 다시 뵈어 좋은 그리운 작가님이 생전에 웃으시던 웃음 같다.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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