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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별의식 - “나는 왜 살아야 하나?”에 답하는 한 자살 생존자의 기록
김세연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6월
평점 :
마트에서 물건 고르다가, 오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직원에게 사과를 하고 카트를 그대로 두고, 정신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무사히 집에 오긴 했다. 그 마트도 주변도 2년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그래서 아주 조금은 이해하고 더 많이 알지 못하는 생존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했다. 멈춰 선 그날, 17살부터의 오랜 시간이 일기가 되고 책이 되었다.
“사건을 은폐하고, 죽음을 은폐하고, 감정을 은폐했다. 죽음은 분명 애석한 일인데 엄마의 죽음은 비밀스러웠다. 엄마의 죽음을 보고하는 그 종이를 들고서 나는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다급히 나의 수치심을 달래야 했다.”
“엄마의 죽음 이후 내 기억을 담당하는 모든 부분이 이상해졌다.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항상 죽은 엄마를 발견한 마지막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엄마가 죽기 전의 내 삶, 내가 경험한 모든 시간이 파편화되어 흩어졌다.”
‘자살 생존자’는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난 사람만이 아니라, 자살자의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살을 한 이로 인해 영향을 받은 모두를 가리킨다. 저자도 나도 자살 생존자였다.
친구는 뭐가, 왜,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 알려 주지 않았고, 그래서 화가 났고 섭섭했고 배신을 겪은 듯 비참했고, 상실에 아팠다. 아주 나중에야... 나 말고 상대에게 겨우 생각이 미쳤다. 하소연도 못할 존재였던 걸 사과하고, 이별을 받아들이고, 간신히 뒤늦은 상례를 치렀다.
유가족이란 남은 사람들이다. 대개는 갑자기 그 위치에 서 있게 된 이들이다. 너무 많은 감정들과 함께 남겨진 사람들이다.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미와 가치는 혼란스럽고 뒤집히기도 하고... 살아가려면 다시 세워 나가야하는 고단한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충격이 강할수록 의미와 가치는 끈질긴 의심에 흔들리고 붙잡는 손가락은 견딜 수 없이 저려온다. 힘이 다 빠져 나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대개 아무도 모른다. 나도 유가족이었다.
자살 생존자이자 유가족인 저자는 수없이 고단한 순간들을... 한 발 디디면 다른 한 발을 휘청대게 하는 외부 세계의 모든 것들을 마주하며, 회전문과 같은 그 길을 걷고 되돌아오며, 애도와 생존을 기록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생이 한순간에 끝날 수도 있다는 허무함에 압도되는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잘 살아 내야 한다는 초조함, 조급함이 내면을 압박한다.”
“몰두할 대상과 반복된 회피로 뒤덮여 진짜 내 모습을 더욱 찾을 수 없었고, 혼란은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원초적인 감정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을 묻어 두고 계속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써야 할까?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하고, 겪어 왔던 시간에 대해 쓰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글을 써야만 했을까?”
여러 번 펼쳤고 오래 멈췄다. 맑게 가라앉혔다 생각한 기억이 탁하게 부유하고, 잘 걷어낸 앙금이 다시 묻어나는 내 기억 때문이다. 명조체로 기록된 단아하고 담담한... 격렬한 전투와 저항의 세월... 저자의 오랜 생존을 바라고 응원하며 이 기록을 남긴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세상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차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데 하늘은 너무 광활하고, 어디에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내려다보면 눈물 때문에 하늘이 금세 어그러졌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 이제 그 시간과 이별하려고 한다. 그리고 기쁘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어머니, 나의 엄마, 당신... 부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