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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6일
나는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앉은 시간이면,
‘자발적 가해’ 아니냐고 했던 현명한 이웃의 말씀이 거듭 떠오른다.
그 이웃이 지금 비엔나 여행 중이시라...
그 소식를 들은 이후로 아인슈페너가 몹시 마시고 싶다.
마차를 끄는 마부...가 아니라 말처럼 피곤하다...
“Bitte zwei grande...큰 사이즈로 두 잔 주시오...”
무용함...을 견디기가 어렵다.
요즘 가장 의지하는 건,
‘what is done can not be undone.’
원뜻과 의도와 무관하게,
뭐라도 하면 전혀 안 한 것과는 분명 달라진다고
생각과 태도를 결곡하게 유지하려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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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동질성을 권리로 여기고 바라며 심지어 요구하는 사람들, 공존이 자신에게 손해나 위험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한 나라와 문화를 장악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 획일성에서 안전을 느끼고 혼성적 사회에서 위험을 - 대체로 상상이거나 형이상학적 위험이다 - 느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늘 궁금했다, 왜들 그러는지. 현재까지 살면서 본 경험에 의하면,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멍청해서 둘은 못 되고 나빠서.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알고도 제 이익을 위해 저지르거나. 물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외부 세력이 개입할 여지는 언제나 있다.
자본이든 권력이든 힘을 가진 이들은 늘 자신들이 기생하는 집단이 갈라져서 싸워주길 바란다. 그래야 감추고 싶은 것도 가리고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은 말 안 해도 되니까. 사회 전체를 가스라이팅할 도구/기술들은 풍부하다.
그래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피곤하고 헷갈리고 지겹지만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하고 책도 읽고... 그러는 것이다...
“변화의 많은 부분이 그것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기억하기 힘든 것이 되어버리고, 그 이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 된다. (...) 사람이란 지금 자신과 한 방에 있지 않은 존재는 알아차리지 못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형태의 부당함이 과거와 달리 가시성을 확보하여, 이제는 누구나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었고 그것이 드러나기까지 어떤 수고가 있었는지 쉽게 잊게 되었다.”
‘현존’하는 모든 것들 중에 그냥 공짜로 생긴 건 하나도 없다. 물건부터 제도까지, 아무리 허접하고 부족한 게 많아 보여도, 없었던 것들을 찾고 만들고 가꾸어온 것들이다.
너무 사소하고 익숙해서 귀한 줄 모르는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뭐하는 이들인지 낮밤을 안 가리고 낄낄거리며 세상의 모든 저질스런 욕을 배설하는 이들의 자유도, 체포되지 않을 권리도. (심히 유감이다...)
‘돼지 목에 진주’는 돼지를 모욕하는 표현이라 안 쓰고 싶지만, 그 뜻은 자꾸 상기되는 풍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수고가 있었는지 다 잊어서, 혹은 배운 적이 없어서?.’ 보수꼰대라서인가... 섭섭하고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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