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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담론 - 라캉이론과 21C 시대정신
조종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5월
평점 :
품절
‘라캉Jacques Lacan 이론’을 원 저작은 읽지 않았지만 한동안 여기저기서 접할 기회는 많았다. 주로 심리학 서적이었고, 대략 표현에 익숙해질 정도로만 정리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한 뒤에는 고민이 생겼다. 도저히 원서를 읽을 엄두는 안 나지만, 그래도 예비 학습 없이 읽기는 지나치게 무성의한 기분...
목표는 늘 그렇듯이 작게 잡았다. 문화 비평 이론으로서의 라캉의 [네 가지 담론들 Four Discourses]를 이해 정리하기. 노장 사상의 ‘무위’ 개념에서 암시를 얻었다는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 명칭만으로도 뇌신경에 힘이 팍 들어가는 용어들이다.
네 가지 담론의 도표는 1972년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을 참고했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짐작대로이니 놀라지 않는다.
- 히스테리환자 담론 : 거세된 주체가 잉여물인 <오브제 아> 생성, 부활의 담론
- 분석가 담론 : 어둠을 아는 신화적 지식 생성, 지배적 담론
- 대학 담론 : 어둠을 모르는 주인기표 생성, 지식을 지배적으로 만드는 담론
- 주인담론 : 잉여쾌락을 모르는 주체의 거세 혹은 죽음 생성, 민주적 담론
: 대학교육이 주인 담론이 아닌 분석가 담론이 되어야한다고 주장
네 가지 담론은 시곗바늘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적용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대학담론은 지식이 권력을 낳고 주인담론은 권력이 쾌락의 종말인 죽음을 낳고 히스테리환자 담론은 죽음에서 부활의 상징인 오브제 아를 낳고 분석가 담론은 오브제 아에서 신화적 지식을 낳는다.
“라캉은 "신화적 형태의 지식"을 중시한다. 우리의 지식이 어둠이나 증오를 배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된다는 정신분석의 윤리도 바로 이 지식에 근거한다. 라캉이 모던주체나 에고 심리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의 전통 윤리학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 즉, 지식이 스스로가 지닌 여분, 혹은 잉여물인 <타자>를 모르면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으로 변질되고 그것은 주인담론으로 폭력과 파멸로 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권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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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해한 내용과 단상을 소개 기록한다. 전공자가 아니고 1차 서적을 읽지 않았으니 오독과 잘못 이해할 여지를 감안하시기 바란다. 담론의 종류를 배우면서 가장 기초적인 이해는 라캉이 발화 주체가 어떤 담론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생성물이 달라진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낯선 이야기는 아니고, 이제 뇌과학에서 인간의 뇌가 얼마나 선택적으로 정보를 기억하고 판단하는지를 알게 되면 허무하지도 않다.
그러나 원리가 어떻든 소통이 생존의 필수이고 공사 영역 모두에서 늘 소통을 하고 살아야하는 인간으로서는 아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식 체계라는 것 역시 소통을 기반으로 한 합의가 아닌가. 합의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니 라캉이 최초의 시작에서 불가능한 점, 부정하는 점, 거부하는 점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란 여전히 도전적이다. 상징과 실재를 형이상학적으로 분리하는 한, 이론과 진실은 멀어지고,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다시, 정신학적, 사회적 틀에서 종합적으로 현상들을 파악해 보려 하는 것이다.
우주학에 대한 대중 지식 정보도 많이 유통되고 있어서,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고 수용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주 내의 모든 ‘사건events'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의미나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 정보도 받아 들이게 된다.
갈등은 인간의 뇌가 어떤 우연적 사건들을 모두 서사로 만든다는 점이다. 서사가 되려면 갖춰야할 조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인과관계나 합목적성... 인지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계로 인한 틈을 모두 메우고 싶어하기 때문에 ‘스토리’를 생성한다.
때론 상상의 영역이라 솔직하게 명명하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스토리가 진실이라 강변하고, 때론 신비한 능력에 의한 예측이라 주장한다. 인간의 역사는 상상과 이야기에 의해 채워져왔고, 그 이야기들 중 일부가 실증을 거쳐 과학의 영역으로 포함되고 있다.
이렇게 간단하면 좋겠지만, 지배세력들은 이에 더해 허위 지식을 진실이라 선전해왔으며, 이렇게 생성된 허위 진실은 현대에도 작용하고 있고, 심지어 지배력을 넓히고 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과학 지식조차 우리를 단숨에 자유롭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물론 2022년의 과학 지식 전부가 전무한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지옥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앙심을 품은 자가 말하기만 하면, 그럴 듯하게 모함을 하면 죽고 죽이는 사태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나는 아는 만큼 관용과 품위가 늘어난다는 것을 믿는다.
지식의 기반을 흔들며,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역설이 거듭 등장하니, 어떤 종류의 신념이 도전받는 저항감도 느껴진다. 어쩌면 이는 한국인으로서 훈련disciplined되고 사회화된 내 정체성의 부분이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나가 되자, 통합을 이루자, 단일민족으로 살자!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고 지금도 활용을 멈추지 않은 대한민국,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탈이데올로기에 열렬히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생명이란 묘한 것이라서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삐죽 튀어나와 제 나름의 길을 찾으려는 욕망이 있으니까.
정신분석학의 이론 대가이며, 정교한 통찰과 오랜 고민으로 태어난 라캉Jacques Lacan 이론들, 일독으로 정리라도 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가까이 두고 천천히 오래 배울 텍스트이지만, 조금이라도 맛본 것이 기분 좋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