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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평점 :
오래되고 단단한 선입견을 깨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상황이건 한 개인의 노력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마치 합격자가 10인 시험에 노력만 하면 100명이 모두 합격할 수 있다는 명백한 거짓말과 같다.
다만 모든 선택의 순간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삶의 방향을 틀었던, 이상적이게는 자신의 꿈이 도착할 방향을 향하는 그런 순간들이 빛나 보인다. 어쩌면, 그런 삶을 만나는 것으로 누군가의 삶도 문득 그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여지가, 선택의 힘이 전해지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유독 영재가 강조되고 가치 있는 과학적 발견은 젊은 시절에 압도적으로 많다는 분야에서 소설보다 기막힌 이야기와 반전이 들린다. 가난, 폭력, 빈민가, 갱스터. 흑인 등으로 불리던 이가 저명한 물리학자가 된다.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가장 심했던 과학계에서, 나사NASA에서 연구하고 교육하게 된다.
“저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식으로 프로그래밍하는 방법도 혼자 익혔어요. (...) 그리고 저는 어떻게 해야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입력값을 넣고 결과값이 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너처럼 불쌍한 흑인 꼬맹이가 이런 백인들이나 할 법한 위대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다니 그거 참 인상적인걸!”
순탄한 해피엔딩 스토리가 아니다. 자식의 재능에 기뻐하며 가능한 지원, 최소한의 격려를 보내는 양육자는 없었으며, 천재를 알아보고 손을 잡고 길을 이끌어주는 스승도 없었다. 주어진 환경은 자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대마초를 팔았다.
“이 세상에는 짐승 같은 놈들이 있다. 한 손으로는 악수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칼을 찌르는 놈들이지. (...)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센 놈이 되어야 했다.”
장학금과 진학을 약속 받은 해군은 아토피 피부염으로 배 위에서 근무할 수 없어 제대했고, 스탠퍼드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 한 뒤는 인종차별에 시달리다 마약에 빠진다. 마약 중독자로 아무 길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의 진짜이자 마지막 기회는 그때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제임스였다.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그는 하킴 무아타 올루세이*가 되었다.
* 하킴(북아프리카에서 지혜롭다는 뜻), 무아타 (진실을 추구하는), 올루세이(신이 행하신 일이라는 요루바어)
“언젠가 내가 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면, 나는 사람들이 내 이름만 들어도 내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어릴 적부터의 그에게 간절했던 한 사람도 만났다. 마치 상징적인 의미의 태양처럼, 태양물리학자 아서 워커는 하킴의 능력과 호기심과 학문에 대한 사랑을 보고 믿었다. 피부색과 계급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꿈이 현실이 되기 시작한 우주적 순간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양자역학에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 벽을 통과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낮다. 그러나 분명 아주 희박하게나마 벽을 통과할 확률이 아주 조금은 있다. 나의 삶은 (...) 벽을 통과하는 데에 성공하는 진동 패턴과도 같았다.”
과학자와 연구자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 산 시기가 좋았다. 그와 같은 외톨이 가난한 흑인 책벌레 호기심 천재들이 지난한 과정을 겪고 마침내 배우게 되었을 때, 그를 만나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여성물리학교수를 찾기 어려웠던 여성물리학도였던 시절의 내가... 뭉클해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SKA 연구진 사진을 보면, 맨 앞줄에 내가 가르쳤던 아프리카 학생 네 명이 당당하게 웃고 있다. 나는 그 사진에는 없지만, 그들 바로 옆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