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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런수런 숲 이야기
고데마리 루이 지음, 오사다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22년 6월
평점 :
오전부터 독살 추리소설과 동물권에 관한 책을 읽고 팽팽해진 뇌파(?)를 느슨하게 풀어보려 산책을 갈까 했더니 자외선 수치가... 저녁 약속도 있으니 토요일 오후에는 집에 머물며 숲 이야기를 펼쳐 본다.
‘수런수런’이란 표현이 의미는 알 듯하면서도 낯설다. 사전을 찾아보니 ‘숲’에 이야기는 수런수런해야겠다는 납득이 간다. 여러 존재들이 한데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웅성거림이니까. 숲은 다양성이 클수록 건강하다고 한다.
10살에 엄마와 떨어져서 혼자가 된, 불안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다 받아들이고 위로의 말은 자연스럽게, 숲답게 건네는 풍경이 부럽고 안심이 된다. 흙의 기분 좋은 서늘함도 숲의 향기도 부드러운 바람도 그립다. 나갈 걸 그랬나.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크고 어려운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르지만, 마이처럼 내가 영향을 미치는 못하는 상황, 혹은 소중한 양육자가 부재한 상황이라면, 그 마음의 부침이 불안이 쓸쓸함이 얼마나 진하고 깊을까.
“엄마와 아빠가 싸우던 모습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엄마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의 숲속에서는 낙엽이 흩날린다. 몰아치는 찬바람이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그 바람은 얼음처럼 차갑다. 지금은 여름인데.”
나는 이제 자신의 노화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고령의 부모님과의 갑작스런 이별이 두렵다. 어릴 적에도 문득 이별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슬퍼서 울기도 했다. 세대 불문 아이들에게 양육자가 사라지는 상상은 가장 무서운 일일 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폭력과 학대가 발생하는 가족 관계는 분리가 꼭 필요하다.
갈등의 원인이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해서 현실적인 상상을 해본다. 가족과 일 중에서 선택에 몰리는 상황... 어리지만 실은 참 많은 것을 다 알고 있는 아이의 불안...
마이가 여행을 떠나게 되어 나는 상징으로나마 참 멋진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여행을 떠나든 관계의 분리와 성장이 혼자하는 여행으로 상징되는 것이든, 마이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여정일 것이다. 현실의 누구에게나 환상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 고모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
거기가 어디든 이런 다정한 숲, 수런수런 숲이 있으면 좋겠다. 인간이 조성한 공원의 숲이라 할지라도 바람은 불어 올 것이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음은 차분해질 수도 있으니까.
‘네가 느끼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고모는 옛날 동화 속 착한 마녀와도 같다. 마이는 그 말에 마음이 놓여 한 가득 고인 눈물을 쏟아낼 수 있으니까. 그만큼 가벼워진 마이는 그만큼 위로로 채워질 것이다.
마이의 말처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도 계속 슬프다.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내 아픔에만 골몰했던 마음을 들어 올려 다른 사람들을 보는 전환은 정말 중요하다. 나를 걱정해주는 이해하려 애쓰는 소중한 사람들, 나와 같고도 다른 안타까운 사정이 있는 친구들... 심지어 아기 사슴에게도 사정은 있다.
사랑은 실증할 방법이 없지만 확실하게 느끼고 기억하는 관계의 핵심이고 존재를 받치는 힘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준 선물은 모두 잊어버려도 사랑받았는지 아닌지는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니 표현도 대화도 아끼지 말자.
수런수런수런수런... 숲처럼 사람처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위로하기 위한 말을 나누자.
마이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바라며, 성장을 응원하며 우리 집 11살 꼬꼬맹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한다. 얼마나 부침이 많을까, 고민이 많을까, 때론 버거울까. 문득 슬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