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ㅣ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평점 :
오늘은... 이른 아침에 존경하는 저자, 의사, 동료 시민의 긴 글을 읽었다. 벌써 수년째 뇌 속에서 뒤척이기만 할 뿐 무시당하던, 남들에게 말고 자신에게 하는 내 질문들이 그의 글 속에 빼곡했다. 기어이 다 읽고 이를 악물고 입을 다물고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엔 딱히 메뉴를 정하지 않았음에도 멍하니 나가서는... 그대로 다른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은 날씨, 기분..... 마음 단속이 급박한 날이었다. 가장 일을 잘하는 직원조차 직장인은 다시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내게 두 번이나 혼잣말처럼 했다.
“당신을 만나고 처음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첫눈에 반하기'만 있는 게 아니라 '첫소리에 반하기'도 있다는 걸.”
나는 확실한 미소포니아* 증상을 보인다. 견딜 수 없는 소리와 특성 음역대의 음성이 있다. 무척 좋은 사람이고 팀을 이뤄 연구를 하고 싶었던 캐나다 출신 유학 동기가 있었는데, 호감과 별개로 그의 목소리를 견디기가 힘들어서... 뭘 함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 예전엔 성격 나쁘다, 지나치게 예민하다란 평을 듣던 신경학적 장애, 장애라는 말이 무겁다면 과민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특정 소리, 반복되는 소리, 소음 등에 반응하는,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미소포니아misophonia이다.
즉, 가치 판단이 불쾌감을 유발해서 그 소리가 싫은 것과는 다르다. 먹방을 싫어해서 후루룩, 쩝쩝, 커어, 워어, 대박이다, 짱 맛있다 등등이 아주 싫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견딜 수 없음이다. 반면 물이 똑똑 떨어지거나 시계가 째깍거린다면 그곳에서 잠을 자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첫소리’에 반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안다. 작품에서 글로 만난 것이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에 TMI 커밍아웃까지 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목요일까지 기다렸다. 책과 함께 선물해준 코코아를 한 여름에 마실 결심도 했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읽으라는 듯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카페, 코코아 한 잔, 도쿄, 호주, 총 12편의 연작... 이야기가 시작 후 확장되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오늘 점심식사로 어딘가의 카페에서 코코아를 한 잔 했다면 내게도 뜻밖의 어떤 변화,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대책 없이 막연한 후회를 해본다. 12편의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섬세한 방식을 찾아가는 즐거움으로 내 현실의 이어짐의 부재를 달랜다.
코코아를 주문하는 코코아라 불리는 이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가 흘린 눈물을 보고 그가 좋아하는 자리를 치우고 말을 건네고 위로하는, 상대가 어쩌면 모를 방식으로... 어쩌면 결정적인 구원의 손을 내미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구원한다.”
띠지의 문장이 흔한 일상이 되길 바라게 된다. 힘들고 서럽고 속상하고, 책을 읽으며 자신을 추스를 시간과 체력도 없는 누군가들을 떠올린다. 다들 나보다 착한 이들이라 나보다 더 힘들게 산다. 단 걸 마시니 마음이 달달해져 너나없이 처지가 더 찡하다.
코코아 빛깔이 아닌, 이야기마다의 색색들, 배경들을 모두 다정한 장면들로 만드는 저자의 문장이 다정하다.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몰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구원을 바라는 따스함이 색처럼 번져있다. 천천히 산책하는 시간, 그 길에서 만난 누구라도 위로하고 싶은 세계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