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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이진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필사만 하고 감상글은 다음날로 미루려고 했는데, 팬이 되었기 때문일까,
욕심쟁이처럼 재미있는 건 나만 볼 거야, 식의 필사에 죄책감을 느껴서일까.
책 생각이 오프가 안 된다.
지적인 사람...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에 대한 통찰을 가진 사람들이 좋다.
유머의 정체와 발원은 잘 모르겠지만, 위트는 확실히 지성에서 태어난다.
엄청나게 재밌는 책이라는 나름의 추천을 이런 식의 이상한 문장으로 한다.
흠... 어쨌든 큰 웃음 보장!
이진송 저자의 데굴데굴 구르게 웃긴 글을 쓰는 능력은 근래 읽은 책들 중 발군이다.
(내 안에서 <나의 먹이>와 순위 다툼 중~)
나중엔 웃겨서 우는지 배가 아파서 우는지 분별력도 사라졌다.
아 참, 나는 첫째고
이 책은 차녀를 이해하기 위해,
동생에게 선물할까 해서 끌린 책이다.
그리고 차(次)인간으로 사는 경험을 하는 누구나 공감할 거리는 넘쳐나며
모두가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저자는 절대 결코 차녀로 독자를 한정하지 않는다.
‘차녀’라는 단어도 내가 사용하지 않은 단어라 낯설었고,
‘중녀’란 단어는 더 새로웠다.
형제자매 많은 상황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늘 있어서
위아래형제자매가 다 있는 ‘중녀’가 마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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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웃음은 이 책을 직접 읽는 시간 동안 저자에게 온전히 맡기고, 나는 무섭고 아픈 이야기를 이 기회에 정리하여 기록하려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철저히 고발되지 않고, 슬쩍 넘어간, 사람 좋은 얼굴들 하고 있는 한 세대의 집단 살해...
“언론의 호들갑대로 80, 90년대들이 어른이 된 지금 성비 불균형은 꽤 심각하다. 출생률이 떨어지니 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느냐고 난리법석인데, 통계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수 자체가 줄었다. 갑자기 증발한 게 아니라, 애초에 적게 태어났다. (...) 피리 부는 사나이가 데려간 게 아니라면, 그 많던 여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자가 몰라서 물은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만 나는 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실재했다고 믿는다. 기형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이 강력하던 시절, 사회는 법과 제도를 동원해서 ‘딸’을 자식으로 가진 이들에게 결과적인 불이익을 예고했다.
그 법과 제도를 바꾸는 대신 수많은 결과적 동조자들이 당시엔 불법이던 낙태시술과 초음파 검사라는 의료기술로 여아들을 골라 살해했다. 태어나서도 기타 등등의 이유로 살해당하는 여성의 수는 줄지 않았고, 성비의 불균형은 사회문제로 인지될 만큼 뚜렷해졌다.
80-90년대 여성들은 그래서 특히 ‘생존자’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여성들도 이후의 수많은 여성들도 생존자이긴 마찬가지지만. 이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지워질 수 있었던, 가까스로 태아로 지워지지 않았던 차녀, 중녀들.
누구를 꼭 집어 단죄하자고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무슨 일이건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 이유를 알고 내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은 중요하고’ ‘그 과정이 가해를 정당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런 시대도 사람도 억지로 용서하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폭력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는 확언하고, 결단코 그 행위를 끊어 없애야한다. 그런 일은 과거로 단절시켜야 한다. K-장녀 이야기가 한동안 회자되었는데, 이제 80-90년대 태어난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해서 반갑고 기쁘다.
‘차녀성’이라는 명명이 생겨서 참 좋다. 뭉뚱그려진 많은 이야기들이, 무슨무슨 세대처럼 실체도 사실도 없는 이야기 말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섬세한 사유로 힘 있는 서사로 목소리와 글을 더 많이 찾아가길 응원한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이 책은 엄청나게 재밌고 지치도록 웃을 수 있는 책이다.
‘엄마의 무면허 발치 시술의 피해자... 펜치... 공구박스...’
웃다 죽는 거 아닌가 했다.
나랑 내 동생은 이런 무서운(?) 일화 하나 없이... 참 심심하게 자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