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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이진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읽는 중 필사 기록...
이진송 작가의 팬이 되었다...
엄청 크게 웃으며 감동 깊이 읽고 필사는 건조한 문장만 뽑은 이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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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호들갑대로 80, 90년대들이 어른이 된 지금 성비 불균형은 꽤 심각하다. 출생률이 떨어지니 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느냐고 난리법석인데, 통계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수 자체가 줄었다. 갑자기 증발한 게 아니라, 애초에 적게 태어났다. (...) 피리 부는 사나이가 데려간 게 아니라면, 그 많던 여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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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차녀가 더 힘들다는 식의 불행 배틀을 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인간은 제 몫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다만 둘째 자녀의 경험과 감정, 그 조금 특별하고 치열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왜 열심히 해서 뭔가를 성취해낼 때마다 고추 타령이나 들어야 했을까? (...) 어째서 나는 내가 딸이어서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에 시달릴까?”
“가족 안에서의 역할은 개인이 선택권을 가지기도 전에 주어지며, 퇴사와 절교처럼 관계를 끊어내기도 힘들기에 자아를 납작하게 짓눌러버리기도 한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대를 끊는다고 친척들이 쑥덕거렸다. 사촌을 데려다가 양자 삼으라는 소리도 대수롭지 않게 했다. ‘또 딸’로 태어난 나는 실망스러운 ‘꽝’이고,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가정폭력과 학대가 일어나지 않아도 상처와 결핍은 생긴다. 나는 반복적으로 학습힌다. 엄마 아빠는 너무나 당연하게 언니의 것이라고. 언니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다른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기분?”
“당연히 제일 잘해야 하는 첫째의 부담도, 첫째보다는 좀 못해야 가정의 평화가 따르는 둘째의 미덕도 낡고 헛된 인습의 쓰레기다. 이딴 게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져 뿌리를 내리고, 어른이 된 후까지 괴롭힌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만큼, 둘째는 다양한 선택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난 나에게는 가급적 더 많은 기회를 주자. 타인의 평가와 말에 휩쓸려 섣불리 선택지를 지우지 말고(...).”
“우리 민지, 그때 지웠으면 어떡할 뻔했어. (...) 네가 이 집 아들이야. (...) 곽민지는 증명하고 싶었다. 아들이 없어도 우리 집에는 빈틈이 없고, 우리 부모는 불행하지 않다고.”
“중심에 서지 못하고, 항상 순서가 밀리고,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편애해주기를 바라지만 차마 대놓고 요구하지는 못하는 욕구와 의사가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된 적이 없기에 생긴 감각 같은 것......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애정을 향한 원초적 갈망과 우선순위에서 끝없이 밀리는 주변부의 경험. 이 모두를 이리저리 뭉쳐 ‘차녀성’이라고 이름 짓는다.”
“약자성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단어이자 개념이다. (...) 미묘하게 끊임없이 ‘밀려나며’ 생긴 감각을 아우른다.”
“아이에게 나쁘게 구는 보호자에게는 여러 원인이 있다. (...)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유를 알고 내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선택권이 없던 그때와 달리 폭력으로 점철되었고, 상처가 깊다면 억지로 그를 용서하거나 이해할 필요 없다.”
“일방적인 폭력은 갈등이 아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자. 무작정 집을 떠나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의미다. (...) 새로고침이 불가능한 관계 바깥으로 나가서, 존중과 애정을 보여주는 존재에게 가자. 그 존재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