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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식탁이 사라졌어요! ㅣ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피터 H. 레이놀즈 지음, 류재향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5월
평점 :
어원만으로 보자면 패밀리(familia, 노예)보다는 식구(食口)가 좀 더 따뜻하고 좀 덜 가혹합니다. 물론 이런 환원주의적 사고는 별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두 세대가 함께 살며 함께 식사를 하는 풍경이 일상인 시대를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노동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고, 가족에 대한 이상적인 추구도 없지만, 피러 레이놀즈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바 역시 구태의연한 시대착오적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떤 가족 구성이든 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도 식탁에서 모이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임에 분명하니까요. 더구나 아이들에게는 그 부재가 더욱 생생한 느낌으로 경험될 것입니다.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리고, 노래하고, 말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느긋하고 행복하게 ‘식사’에 집중해도 되는 시간... 십 분 내외로 뚝딱 할 수 있는 조리법이 아니라면 시도도 잘 안하는 나로선 바이올렛이 회상하는 이 과정이 눈부시게 사치스러운 일로 느껴집니다. 싫다는 게 아니라 할 수 없어 서글프지요.
아주 간혹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작동합니다. 구매, 손질, 조리, 뒷정리까지... 사 먹는 것에 비해, 비용만으로 따져보면, 이 무슨 수지가 안 맞는 일일까...하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머리를 털어내긴 합니다만.
관계의 부재를 구체적인 물질인 식탁의 사라짐으로 표현한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 식탁은 도구이자 가구이자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바이올렛은 어떤 해법을 찾았을까요. 울지 않고 조르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몹시 현명하고 자연스럽게 멋지게 해결(?)합니다. 놀랍고 부럽고 즐거웠습니다. 보드라운 지혜가 힘이 세서 참 다행입니다.
그림책이라 색감의 변화로 감정과 상황의 변화를 전해주는 방식이 아주 멋지고 좋았습니다. 내 추억과 마음에도 부드럽게 여러 색이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