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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 독자에서 에세이스트로
배지영 지음 / 사계절 / 2022년 4월
평점 :
힘을 뺀 ‘특별한’ 제목이 특별합니다. 대개는 글 ‘잘 쓰는 법’을 제목이나 부제에 담으니까요.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란 생각에 제 몸에도 힘이 빠지니, 손글씨와 손편지를 드물게 쓰게 되었을 뿐... 내가 살아온 삶도 매일 쓰는 일의 연속이었단 생각을 합니다.
글 쓰는 일이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건 문학 창작이지만,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엔 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호모 글쓰기’, 즉 ‘쓰는 사람’입니다. 어느 분야든 기록이 기본이니 다양한 형식의 쓰기를 요구하지요. 이 책이 업무문서 쓰기에 관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제목과 같은 느낌의 조용하고 다정해서 부러운 책방과 글쓰기 모임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따뜻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시지... 200쪽 밖에 안 되어 일독 후 아쉬움에 책을 오래잡고 서점과 상주작가와 모임에 참가한 분들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부터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스스로 원해서 오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를 듣고 싶었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고 싶었다.”
“글쓰기는 말이나 글로 배우는 게 아니다. 자전거 타기나 아이돌 댄스처럼 몸으로 익혀야 한다. 수련하듯 일정한 주기로 글쓰기 숙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무결석. 이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 딱 열 명만 모집한다고 SNS에 올렸다.”
창작은 당연히 ‘겪는 일’일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종종 읽는 일이 곧 ‘겪는 일’이 되는 경험을 어떤 책들을 만나 하기도 합니다. 잊었던 혹은 잊고자 했던 기억이 온통 헤집어져서 고스란히 그 시간을 복기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경험을 하기도 하지요.
저자가 ‘창작이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가진 ‘뜯어 먹기 좋은 풀밭’에서 자라는 자신의 이야기인 풀을 기반으로 ‘무엇을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셔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오래전 이야기가 만들어준 풀밭만 뜯어 먹으며 살 수 없다. 일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공동체에 작은 힘을 보태면서도 덤불 속에서 올라올 새로운 이야기의 싹을 틔워야 한다.”
“글쓰기를 시작하겠다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세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오래 인지를 못했지만 블로그 글도 ‘발행하는’ 행위라고 부릅니다. 공간과 시스템을 대여하고 운영하는 회사가 정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블로그 포스팅은 모두 출간물처럼도 느껴질 수도 있지요.
3장에서는 이와 관련되어 제가 흐릿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다뤄주어 정리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를 위한 일기’와 ‘읽을 사람 - 타인 - 을 위한 에세이’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달라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진지하게 글 쓰는 일에 대한 이해가 말끔해집니다.
‘가까워 보이지만 먼 길이고, 쉬워 보이지만 노력이 필요한 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을 걷기로 한 모든 용감하고 멋진 분들을 응원합니다. ‘글 쓰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게 된 책입니다. 이런 다정한 가이드가 생겼다니 부럽습니다.
“하찮아서 지나친 것, 장막 뒤에 가려진 것을 볼 수 있는 시각이 글쓰기의 기본값이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쩨쩨하게 굴었던 마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쓰는 재미에 빠진 사람이, 더 좋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