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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평점 :
깻잎이 좋아하는 식재료라서 일까...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겪은 것처럼 충격이 컸다. 이 책을 읽기 전 깻잎과 관련된 경험은 서 너 개의 모종만 심어도 섭섭하지 않게 보드라운 잎을 먹을 수 있는 허브였다. 혹은 지인들이 주말 농장에서 키워보니 향도 맛도 참 좋더라는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농장에서 대량 재배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며 식당 등에서 나오는 깻잎의 생산과 유통에 관해 궁금해 한 적도 없었다. 무지와 순진은 불편하고 때론 원치 않는 시스템의 동조자나 공범이 되게 한다는 것을 다시 절감한다.
한국에서 대량 소비되는 깻잎은 거의 대부분 농장에서 노예 노동을 하는 이주 노동자가 키우고 따고 포장한다. 취식 현실은 아주 열악하다. 한 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환경도 있다. 열대 기후에 속하는 캄보디아에서 온 이들은 추위를 어떻게 견디며 지냈을까.
긴 노동 시간은 건강을 해치고 산재로 판명될만한 문제를 일으키고, 인권 역시 침해 정도가 아주 심하다. 판데믹 시절 내내 코로나 확진 사망자보다 산업 현장의 사고사망자들이 더 많다는 숫자에 바이러스도 멈추거나 바꾸지 못하는 노동현실이 끔찍했다. 주요 일간지 1면에 사망자의 성명이 모두 기록되어도 변화는 저항보다 약하거나 너무 느리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권은 선전을 위해 GDP가 정답이고 기준인 것처럼 떠받들고 앞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가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을 GDP로 정하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가난을 이유로 차별하고 착취하고 합리화시켜서는 안 된다.
농촌을 미화하고 농업을 영성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농사일은 너무 고되고 차별과 수탈의 역사는 길었고, 산업농만 살아남은 결국엔 그런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늘 상승만하는 물가에도 누군가의 체불된 임금이 나의 식재료의 값을 싸게 만들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주노동가가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머물고 있는지, 이런 형태가 된 원인은 무엇인지, 대책은 있는지... 이 모든 것을 처음 배우고 고민해본다. 그 계기가 이 책이라 다행이고 무척 감사하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알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저자의 경험이, 기록이, 연구 자료가, 고발 르포와 같은 이 책이 힘 있는 근거가 되어, 법률 개정과 이후의 총괄적인 사회 변화에 함께 하는 근거와 계기가 되는 시간을 상상해본다.
“사실 어떤 이주민도 ‘불법 체류’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불법’일 수도 없으며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없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No one is illegal).’ 우리는 이 구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이미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해오고 계실 것이다. 대부분 그렇지만 대단한 도움을 드릴 길이 없어 민망하고... 그럼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