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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 울음이 그치고 상처가 아무는 곳, 보건실 이야기
김하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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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대한 나의 태도를 새롭게 배우는 책을 작년에 만나 여전히 배우고 있다. 에세이이고 너무 감사해서 모셔두는 책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더 오래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될 것이다. 거듭 읽고 배우고 외우고 거듭 복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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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이라는 공간의 의미도 새로웠다. 학교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공간이라니... 특히 집에 아무도 없어 일찍 학교에 와서 보건실에 누워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얼마일지... 현실이 쓸쓸하고 참 미안했다.
“보건실은 간단한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위험한 징조를 감지하기 위한 센서가 되기도 하고, 가정과 교실에서 소외된 아이를 마지막으로 걸러낼 수 있는 체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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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경력을 가진 분이 아이들에게 지시하기 보단 자신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뭉클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온갖 종류의 방문 이유들, 수많은 증상들, 심각한 질환들, 그리고 짐작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사는 일, 아픈 일, 관계에 대해 직접 느낀 것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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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에서는 안심이 되어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고, 다른 내용에서는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워 따가운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 50명 가량의 아이들의 삶과 마주하며 저자분이 마주하는 시간들을 짐작해보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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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친구는 담임이 되어 여러 해 가정폭력에 시달린 반 아이와 동생을 돕느라 식칼을 들고 찾아온 가해자와 마주치기도 했고, 강력계 담당 형사와 이메일을 무수히 교환하다가 그 해 업무를 마치고 결국 여러 병증으로 입원을 했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거나 없으면 더 좋겠지만 보건교사인 저자 역시 ‘아프다’고 하는 어린이들을 살피는 일에서 심각한 폭력과 범죄의 증거를 만나고, 만성질환과 그에 따른 고통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발에 피는 안 나잖아요. 이 정도면 살 만한 거죠.”
학교 전체에 단 한 명의 의료인이라는 현실은 부끄럽고 화도 난다. 의료는 기본권이고, 학생들이 제대로 배워야할 의료 상식은 얼마나 많고도 중요하며, 활동량이 많고 다수가 함께 하는 공간에서 의료의 필요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현실적인 내용들을 읽다 보면 현장의 목소리에 갈급해지는 기분이 날카롭게 일어나지만, 요란한 내 반응과 달리, 지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좀 더 사랑하기로 했다는 해법 앞에서는 부처를 대면한 듯 존경심만 솟는다.
얼마나 노력하셨으면 아이들과 눈물도 기록하고 그림자까지 보게 되셨을까. 제발 좀 이런 중요한 곳곳에 예산도 충분히 배정하고 인력도 좀 늘립시다. 따스하고 다정한 일러스트가 모조리 땀과 눈물로 그려진 듯하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아이들의 작은 아픔도 제때 발견해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어른답게 사는 법, 어른 노릇에는 많은 다양한 일들이 있겠지만, 부디 어린이들이 필요한 환경을 미리 생각해서 마련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와 책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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