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끝이야
콜린 후버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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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건지 몽롱하지만 매일 뭔가 해치우며 이어지는 날들이번 주엔 날씨 변화에 적응하느라 더 지쳤다주말에 나른하게 읽을 밀리언셀러 로맨스 소설반전 스릴러가 있다고 들었지만 로맨스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마음을 놓으며 내겐 너무 당도가 높은 전개를 따라가다가...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없었던 적이 없는 폭력더 늘어나는 중이라는 폭력... 가정폭력이다이런... 번역 제목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어감과 주제는 원제를 보면 알 수 있다. <It ends with us> 뭐가 자동으로 순순히 끝난다는 표현이 아니다. ‘우리가 끝낸다라는 의지와 선택과 결심이다.


 

세상의 모든 우연을 원인과 결과의 서사로 만들어 이해하는데 길들여진 인간의 뇌는 주인공 릴리가 만난 모든 우연 역시 운명과 사랑이라는 상태로 설득시켰다정신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망가져도 노력하면 얼마간 감출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상대를 완벽하게 기만할 수 있다.

 

합리화는 증오가 준 힘을 갉아먹으며 저를 조금씩 잠식하고 있어요.”

 

일단 관계가 성립하고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독자가 외부에서 관찰하면 너무 확연한 폭력과 복잡한 굴레와 반복되는 실수와 가해자의 뻔뻔한 변명과 비겁한 서사를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그러다 현실에서는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익숙한 패턴을 깨려면 천문학적인 고통과 용기가 필요하다때로는 제대로 착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뛰어내리는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보다 익숙한 패턴을 계속 따라가는 게 더 쉬워 보인다.”

 

한 때 나는 가정폭력을 경험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왜 폭력 성향을 가진 남자를 선택할까 의아했다지금은 폭력적인 남자들이 아주 많은 세상이라 확률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에 동의한다유일하게 합리적인 설명이다.

 

미안해제니 사고였어정말 미안해.”

 

미안해릴리 사고였어정말 미안해.”

 

거듭 말하지만 가해자의 서사를 피해자가 들어주고 이해하고 사랑할 의무 따윈 없다폭력은 폭력이고 범죄는 범죄다변하고 싶다면 당사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약자에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해진 폭력을 정당화할 이유 따윈 세상에 없다.

 

구역질이 나고 화가 치밀지만... 그래서는 제목의 단호한 결단을 제대로 응원할 수가 없으니 호흡을 깊게 한다욕지기를 내뱉으며 사는 할머니가 될까봐 나는 요즘 무척 두렵다.


 

왜 우리인지를 이해하고 부러워한다. ‘우리여서 제대로 끝낼 수 있는 것이다. 488페이지의 이 작품보다 더 복잡하고 역행하는 현실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어 이것을 끝낼 수 있을까... 세상만사 잊고 잠시 살고 싶었는데 처절한 현실의 한가운데에 다시 서게 된다.

 

사람들은 대게 왜 여자가 떠나지 않는지를 궁금해한다왜 남자가 폭력을 휘둘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그것만이 유일하게 비난 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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