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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뀌는 제로웨이스트 습관
고금숙.이주은.양래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평점 :
한 때 나는 내 삶이 무척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으로 몇 해 살다 보니 의식자체도 없었다. 그런 편안함과 오만은 내가 속한 시스템을 벗어나자마자 무너졌다. 친환경 재료와 제품만 파는 다양한 지역의 작은 가게들, 자연스러운 분리배출과 재활용, 채식을 하면서 생긴 음식쓰레기를 공통으로 퇴비화하는 마법이 사라지자, 내겐 개인적 분투 이외의 옵션은 남지 않았다.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 이해와 설명도 필요 없던 안락함도 사라졌다. 뭐라도 하려면 갖가지 방해와 오해와 비난이 들리기도 했다. 하소연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실천과 윤리 의식을 훈련하는 대신, 시스템을 갖추면 훨씬 적은 스트레스로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포장, 개별 포장, 과대 포장 물건들을 사서 쓰레기를 매일 산더미처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고민도 의식도 없는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물건들을 찾고 구매하기가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무수한 타협을 했다. 후회나 원한은 없다. 비로소 진짜 현실에서 살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여긴다. 논문과 학계와 동료들이라는 울타리 밖의 세상은 20-30년 전에 배우고 주장하고 다소 지겨워진 이론이 적용은커녕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러니 친환경은커녕 제대로 만족할 만한 소비생활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결국엔 순환하지 않는 쓰레기가 내 삶에 어떻게든 들어온다.
집에서는 일 년에 20L 쓰레기봉투 3-4개 정도만 필요하지만 집 밖의 내 일상을 유지해주기 위해 타인들이 한 노동으로 생긴 몇 배의 쓰레기가 어딘가 쌓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내 집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가 위로가 되진 않는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누구도 매일 쓰레기를 만드는 삶을 피할 수 없다.
어쨌든 소득노동을 하느라 나는 개인적 실천 이외의 사회적 참여를 거의 못하고 살았으니 크게 불평을 늘어놓을 처지는 아니다. 놀라고 충격 받고 포기하고 타협하며 근근이 사는 동안, 힘차게 멋지게 세상을 바꾸는 분들은 늘 있어왔다. 이 책 역시 그런 분들이 전하는 동아줄이다.
인간의 태아부터 심해생물들, 남극의 펭귄까지 모두 숨 쉬고 먹고 마시는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고, 관련된 탄소배출도 줄이고 싶은 이들을 위해, 플라스틱 포장용기 버리는 횟수를 줄일 수 있도록 ‘알맹상점’을 만들었다. 어떤 상점인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실 것이다.
고금숙, 양래교, 이주은 세 분이 공동대표다. 시민활동가 세 분이 얼마나 고초를 겪으며 생활용품을 구하고 공급과 납품 거래를 찾아다녔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어 마음이 아프고 뜨거워진다. 처음 하는 일의 기준은 하나부터 다 새로 만들어야 하니 그 또한 힘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자꾸 시스템을 갖추자고 하는 것은 1년만 버텨볼까 했던 이 상점을 지탱해주는 공감하고 실천하는 분들 때문이다. 선택 가능한 옵션들이 마련되면 반드시 찾아서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 할 방법이 있으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동안 하기 싫었던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던 분들이 많은 것이다.
알맹상점을 찾는 분들은 ‘알짜’라고 불린다. ‘알맹이만 원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제 본 피할 수 없는 연구자들의 보고서에는 5년 내의 기후격변에 대한 자료가 가득했다. 수만 년 동안 살아본 적 없는 기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을 재빨리 해서 살아남는단 말인가. 수백 년 된 나무들로 퍽퍽 갈라지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제로로 만들고 배출한 탄소를 포집해도, 그동안 펑펑 낭비하며 산 대가의 여파는 짧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제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으라!
생존에 필요한 일에는 공공기관과 공적영역의 결단과 시행이 시급한데,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느리니, 알맹상점들의 번창과 확장을 더 간절히 응원한다. 든든한 실천 가이드가 될 이 책을 반갑게 읽어 주시면 좋겠다. 동영상 자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