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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쁨 - 산책과 커피와 책 한 권의 행복
최현미 지음 / 현암사 / 2022년 3월
평점 :
SNS의 폐해라고 기사에 오르내리는 내용들 중에는 화려한 삶을 전시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비교하다가 피해의식이나 자괴감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이가 아님에도 하루 할당제로 사적인 온라인 활동(?)을 해서, 천천히 둘러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나는 그런 발행물도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찬란한 글을 쓰는 이들, 부럽게 즐거운 산책을 하는 이들, 환경과 기후에 따른 피해를 막아보려 애쓰는 이들, 국내외적인 문제들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 엄청나게 정교한 도안을 믿을 수 없게 채색하는 이들, 때론 전문 연주가들보다 깊이 울리는 연주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 모든 분들에게 다양하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만, 그게 내 행복감을 떨어뜨리거나 초라하게 만들거나 과소비를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사소한 기쁨’을 많이 알고 있거나,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사소하지 않은 기쁨’일 수도 있다.
“건너뛸 수 없는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삶을 만든다는 당연한 사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 만약 내가 어쩌다 아주 크고 거창한 기쁨을 만난다면 그것 역시 작은 기쁨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 만든 나날들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모든 일상의 풍경들은 - 반복되고 유지되는 것들이라면 - 모두 각고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힘겨운 결과물이다. 마치 기본 찬으로 당연히 나오지만 따져보면 김치가 가장 고가의 고급 식품일 수 있는 것처럼.
새벽달 보고 출근하는 저자의 에세이가 이렇게 차분하고 잔잔한 기쁨으로 채워질 수도 있는 건가 싶지만, 그런 분이기 때문에 사소하고 평범해서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해 200페이지가 넘은 글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 납득된다.
저자에게는 독서가 기쁨이자 취미이자 직업이라서 당연히(?) 책 속에 언급되는 많은 책들이 가장 반가웠다. 읽은 책들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넘쳐 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풍기는 기쁜 마음에 설레는 독자의 기쁨!
“책은 사람의 인생을, 세계의 역사와 시대의 운명을,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와 광대한 시간을 품고 있다. (...) 누군가 그 책장을 열면 책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중간에 읽기를 잠시 멈추고 더블 연봉 정도로는 - 내기를 하려면 더 파격적인 제안을! - 양보하지 않을 내 일상의 기쁨들을 생각해보았다.
아침 첫 바깥 공기, 연주 음악, 포트에서 퍼지는 커피 향과 뜨거운 커피 첫 모금, 저녁 산책, 부드러운 바람, 책 읽는 시간, 다정한 사람들(소식), 맛있는 술, 쓰레기 안 만든 날 안 산 날, 자려고 눕는 이완의 순간, 깨지 않고 자는 밤잠, 무탈한 날들.
다녀보고 둘러봐도... 정답이 있으리란 기대한 세상은 없었다. 기막힌 사기를 당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사는 중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비교적 장수하고 싶었는데, 내 수명이 아니라 지구가 언제 인간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바꾸어 버릴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식의 엔딩은 올 것이다. 급작스럽기 보다는 천천히, 예측하고 예감할 수 있는 형태이길. 마지막 순간까지 재밌는 책을 읽고 크게 웃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좋아하는 이와 인사를 나누거나, 바람을 느끼거나, 하늘을 보거나... 하며 행복하게 떠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