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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슬프다... 드문 감정은 아니다. 그래도 내용은 매번 다르다. 모두의 것이 다르다. 슬픔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슬픔은 가능한 잠시만 고였다 흘러가고 옅어져야 한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그 슬픔에 빠져 죽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 제목은 참 무서운 말이다. 슬픔이 역류하다니. 역류에 휘말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강이 될 정도의 슬픔이 삼키고 가라앉힌 것들은 무엇일까.
과문해서 모르던 책과 영화를 한 번에 새롭게 만났다. 2022년을 더 이상 희망적인 21세로 여길 수 없는 시절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 가해진 여러 치사하고 야비한 검열과 제재 소식까지 함께 알게 되니 슬프다. 인간이 사는 모양이.
책 속의 인물들은 독자인 나보다 더 슬프다. 심하게 아플 것이다. 그들의 아픔을 차분히 읽어가는 것에 체력이 푹푹 들어간다. 위로할 방법이 없어 계속 읽는다.
손을 끌어 당겨 빼내고 싶지만 본인이 정하지 않으면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슬픔의 강에 빠져 죽지 말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읽는다.
세상과 문학의 모든 구원자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야오의 슬픔, 소녀에게 관대한 전개와 결말은 여기에는 없다. 이혼, 가정폭력, 소외, 임신, 임신중단, 다시 가정폭력 그리고 학교폭력...
슬픔이 존재를 주장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이야오가 마주하는 고통은 컸고 계속 쌓여간다. 살면서 하나의 고통, 경험을 삼키거나 뱉고 자신의 삶을 따로 사는 일도 평생의 고역이 될 수있다.
이야오는 여러 개의 고통에 싸인 삶을 살아가며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다. 이야오의 문장들을 읽으면 날갯죽지 부근이 욱신거렸다.
상처를 입히더라도 때론 도와주는 존재,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존재인 구썬시를 어떤 마음으로 읽고 이해해야하는 지에 시간이 걸렸다. 선악이 한결같이 발현되는 존재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그가 이율배반적인 현실과 사람들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인물이다. 이기적인 짓고 하고 도울 수 있는 건 돕기도 하고 쉬운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죄책감에 돕기도 하고. 인물들이 사실적이라 고통과 슬픔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이유로 슬픔이 역류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가 찾은 계기가 꼭 정확한 이유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이야오와 구썬샹이 현실에서도 슬픔의 강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한 문장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빛과 어둠이란, 선과 악이란 인물들이 본원적으로 가진 것들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이들 모두가 내게는 피해자들로 보인다. 슬프다. 역류된 슬픔은 기어이 강물이 되어 누군가는 휩쓸려 들어갔다.
자신의 슬픔 속에서, 강물 속에서 호흡이 가쁠 때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상대를 정확히 보고 이해한 선의가 아니라면 거부당할 수 있는 것 역시 물이 흐르는 것만큼 당연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사랑하는 이들, 슬픔을 느끼고 침잠하는 자신에 만족스러워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때론 누구나 농도만 다를 뿐 그런 감정 속으로 들어가 현실의 자신을 잠시 쉬게 하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행위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떻든 그건 모두 얼마간의 도움을 요청하는... 구조를 바라는 다른 신호들로 보이니까. 현실을 바꾸는 게 힘든 모두가 잠시 그럴 수 있다. 그런 시간이 필요 없다는 이들은 현실의 뭐라도 바꾸는데 마음을, 몸을, 애를 써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역류했다고 하더라도 강이 되어 다행이다. 강은 어떻게든 흐르게 마련이다. 계속 흐르기를, 그래야 바다로 가서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슬픔과 이별할 수 있다. 문장과 문체에서 이국적인 매력과 향수를 많이 느꼈다. 찬란하게 슬픈 호흡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