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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평점 :
무려 고등학생 시절에 처음 읽은 책의 50주년 기념판을 만납니다. 마치 진화의 여정을 걸어온 인류 구성원의 정체성이 잠시 강해진 듯한 감상이 먼저 듭니다. 당시에는 놀라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정보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한쪽에서는 유전자편집 기술이 곧 활용될 것이란 논의가 활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현존한다고 해서 동시대를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매일 절감합니다. 의사소통이란 과학 영역에서도 이토록 어긋납니다.
여전히 정확한 과학적 상상력을 나눌 진화가능성은 있고 인류가 이룬 문명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매일 전쟁이 하루빨리 멈춰지길 바라며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설명해준 고마운 과학고전을 다시 읽어 봅니다.
제목을 보면 왜 인간이 ‘털이 없어진’ 것인지 우선 궁금해집니다. 털이 남아 있긴 하지만 몸을 제대로 보호하고 추위를 막을 기능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다른 영장류들이 털과 가죽을 가진 것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이한 점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용불용설(用不用設) - 털이 필요하지 않아서 진화를 거치며 털을 없앴다 - 이 여전히 맞는 설명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냉난방이 되는 집과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인류가 자원을 이토록 낭비하지는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듭니다. 재빠른 제 감상과는 별개로, ‘왜 인간에게 털이 없는 지’를 열심히 고찰하는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는 일은 무척 즐거운 과학탐구입니다.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대성공을 거둔 이 별종은 보다 고상한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는 데에도 똑같은 양의 시간을 소비한다.”
여러 해전 만화가 한 분이 외계인이 지구인을 ‘먹이’로 삼아 인간이 다른 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취급하면 어떤 장면을 볼 수 있는지 네 칸 만화를 그렸습니다. 인간을 도마 위에 산 채로 두고 여기저기 찔러 보며 “아직 살아있죠? 싱싱하네요?” 하고 내장을 하나 꺼내 맛보고 살을 저며 내어 맛보고.
인간으로서 만화인데도 보기에 즉각적으로 역했습니다. 시야를 달리하면 우리가 식재료, 고기라고 부르는 동물을 어떻게 취급하는가가 달리 보일 것입니다. 고통을 통증을 느끼는 생물을 신선하게 먹자고 즐기며 조리하는 장면이 기분 좋고 식욕이 동하는 문화가 좋은 것일까요.
이 책이 흥미로운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동물학자가 외계인이 지구의 인간을 보면 어떻게 분류할까, 로 시야를 돌려 관찰하고 통찰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털 없는 원숭이, 더 정확하게는 유인원ape’이 인간입니다.
데즈몬드 모리스는 인간을 격하시킨 과학자였을까요, 인간과 더불어 다른 동물을 격상시킨 학자였을까요? 2%의 차이가 있지만 98% 동일한 유전자를 가긴 생명이라는 발표는 당시에는 얼마나 과격한 발견이었을까요.
잊었던 내용이 기억나고 처음인 듯 새롭게 만난 내용들도 있고 덕분에 눈앞의 매일을 흐린 노안으로 겨우 보며 화만 내던 시간을 떠나 인류, 문명, 진화의 세계에 머물러 보았습니다. 거시적인 관점은 숨고르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목은 익숙하지만 읽지 않았던, 혹은 내용을 잊은, 혹은 요약본이나 축약본을 읽었다면 정독하기 좋은 반가운 개정판입니다. 처음 읽는 분들은 예전에 제가 그랬듯이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날 것이고, 동물학, 생물학, 진화학에 대한 책을 읽은 분들은 최초의 의미 있는 통찰을 한 고전과학서로 느끼시겠지요.
존경하는 최재천 교수님과 저자와의 대화가 개정판에 실려서 무척 반갑고 기뻤습니다. 두 분이 관점이 무척 달라서 독자들에게는 더욱 풍성한 생각거리와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멋진 효과가 있습니다. 누가 맞다 틀리다를 밝히는 것보다 저는 한국사회에 과학적 논의가 활발해지는 모든 기회가 귀하고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