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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평점 :
복잡하고 번다하지만 지루하기만한 세상에 아름답고 신기한 새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어’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짐작한 모어毛魚(털 난 물고기)이기도 하고 짐작 못한 모어More이기도 하다. 미학으로 존재와 사상을 항변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높다, 세다.
오래 전 가장 설득력 있고 인상 깊은 모피반대구호는 “표범 가죽은 표범이 입어야 가장 아름답다.” 였다. 그 문장 하나로 남의 가죽을 벗겨 멋진 듯 입고 있는 인간들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성소수자들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이성애자straight들의 응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호는 “You are more than perfect완벽 이상의 존재다” 였다. 유일하다고 최상급이라고 정상이라고 당연하다고 하는 ‘원래’라는 폭력에 수긍하지 말고 생명이란 언제나 more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다른 모어more를 만나 기쁘다.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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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첫 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으나 일신상의 고됨으로 글자만 읽히고 뇌에 머물지 않았다. 덕분에 영상 자료와 인터뷰 글을 잔뜩 찾아 볼 수 있어, 조금은 더 다면적인 생각을 알사탕 녹여 먹듯 해보았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제 멋대로 단정하고 욕하고 비난하고 폭력을 행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뭐하는 사람인가, 그럴 수 있다고 누가 그랬나. 확실한 이익 도모를 위해 야비하게 구는 탐욕스런 자들은 이해할 수 있다. 부화뇌동하는 자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무슨 옷을 입든 누굴 좋아하든 그게 왜 나의 문제인가. 나는 늘 남 일에 열을 올리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떠들어대는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그냥 답답하고 갑갑했다. 이유가 무엇인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다. 말이든 글이든 행동이든.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나 큰 죄가 되어야 했나. 그동안 우매한 인간들이 보내온 시선과 폭력은 노력과 반성도 없이 희미하게 형태를 잃어갔다. (...) 차별과 차이에서 멀리 도달 안 한다는 그저 나인 나로 살아가겠다. 남성도 여성도, 강자도 약자도 아닌, 아름다운 한 인간으로.”
아무도 타인의 삶을 모두 알 수 없다. 내내 그 삶만 보고 이해하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모두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에게 타인이고 서로를 모른다.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에세이는 작가와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서 읽고 나면 지인이 된 것도 같고, 그 세계가 나의 세계와 슬쩍 겹쳐지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 작아서 이렇게 경계를 늘려주는 시간과 경험이 언제나 귀하다. 드랙(드래그)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대해서 배웠다.
태어나보니 나일 수 없는 몸에 갇힌 이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며 살 수밖에 없는 이들, 그 자체로도 고된데 이유 없이 혹은 별 시답잖은 이유로 차별과 모멸과 혐오를 견뎌야 하는 이들, 누구나 수술을 원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합의가 가능할 것 같은 주제로도 어긋나려면 얼마든지 곤란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존재를 설명해야하고 이해 받아야 하는 기막히고 숨막히는 현실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왜 그래야하는지 알 수 없는 심정으로, 왜 당당하게 요구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을 향해!
게으른 당연함, 강박, 몰아붙이자는 주류, 대세... 이런 것들이 신물이 난다. 요즘 내가 사는 모양새가 무기력해서 대부분 화가 나있어서... 다양한 괴변을 듣고 생각해볼 여유가 더 없다. 예의 바른 척 예의바르지 않은 이들의 큰 목소리를 참고 견딜 이유가 없어졌다.
“당신이 우연히 날 만나게 된다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특하고 끈질기게 이어지는 사유와 문장들에서 만난 의지, 슬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태도, 행복을 갈망하지 않는 놓아버림, 꼴사납도록 모순투성이고 이율배반적인 삶에 대한 수용... 내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확신이 폭력과 추함으로 귀결된다면, 슬프고 기쁘고 괴롭고 즐겁고 기괴하고 아름답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한 모어들과, 함께 살기로 한 이들의 삶이 더 자유롭고 더 해방일 것이다. 우리 모두 갇히지 말고 more than more하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의 의무이다.
차별금지법 당장 제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