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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내 운명 - 순천만정원박람회장 나무 전담 팀장의 숨겨진 나무 이야기
이천식 지음 / 문예춘추사 / 2022년 2월
평점 :
첫 문장이 나무와 자신이 ‘땔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는 책이라 좋다. 덕분에 웃기도 했다. 절묘하게 해석되는 저자의 이름에 기분이 더 좋아진다. 이천식(李千植 : 오얏나무를 천 그루 심다)
저자는 녹지직 공무원이다. 처음부터 나무 심는 조림 업무 담당이었다. 그리고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총괄하는 정원시설부장으로 일한다.
“나무의 이름으로 세상에 왔고 나무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광장과 공원이 부족하다. 사유지가 압도적이고 상업 공간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잠시라도 만남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일정 거리마다 공원을 마련해서 도시 설계를 하라는 법 규정이 있는 국가들도 있다.
저자는 유럽의 정(공)원들을 보고, 공원에 대한 지도자의 철학, 시민들의 공감을 배운다. 정(공원)은 그저 예쁜 꽃들을 가져다 심고 구경하는 인공 정원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정원은 ‘인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문화요소’이다.
“귀하고 천한 사람 없듯이 나무도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나무는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 당연히 나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섬겨볼까 가늠만 하던 나와는 달리 확신과 철학을 가진 분이다. 나무의 마음이라... 좀 더 부대끼며 살다보면 알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조차 정원박람회장에는 나무가 살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나무가 죽으려야 미안해서 죽지 못하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믿었다.”
조경팀장으로서 할 일을 하다 욕먹는 이야기, 심어진 나무만 봐서 짐작도 못했던 나무 옮기는 이야기, 심는 이야기, 뿌리와 관련된 지식들... 이 책은 온통 나무 이야기로 가득하다. 수종도 다양하고 나무들의 고향과 사연, 연령도 다양하다.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구나, 흥미롭고 신기했다.
“가끔 겨울철에 나무를 굴취하다 보면 뜻밖의 손님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무뿌리 주변에 뱀이 월동을 하거나 갖가지 곤충들이 나무와 공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무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식하는 나무들 중에는 도로 확장공사 구간 내의 가로수들과 공공사업장의 나무들도 있다고 한다. 한편 참 다행이다 싶고, 다른 한편 선택받지 못한 나무들의 처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인간은 모두가 제 땅인 것처럼 금을 긋고 이름을 올리고 소유를 증명하는 기록을 만들지만, 정말 땅도 나무도 인간의 것인가.
‘정원’과 ‘공원’이라는 개념은 유럽에서는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사유지와 공영지가 있지만, 일단 규모로 구분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사유지였던 정원이 기증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서울대공원’과 같이 공원이란 명칭이지만 입장료를 받는 놀이동산과 같은 공원과는 다르다.
그럴만한 것이 10년 전까지 정원에 관련된 법규조차 없었다고 한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당시에는 정부 주무부처도 확실하지 않았다. 허가는 났지만 실무라가 요청을 해야 주무부처가 생기는 신기한 상황!
“언제 보아도 나는 나무가 좋다. 나무와 함께 해서 행복하다. 앞으로도 나는 나무와 함께 정원박람회장을 가꾸고 삶을 가꾸며 나아갈 것이다. 나는 나무로부터 행복을 선물 받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지구의 날, 에 무척 불안한 보고서와 기사들도 접했다. 마무리를 행복한 저자의 행복한 글로 할 수 있어 무척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