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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평점 :
“이 스튁스 강에 대고 맹세를 하면, 반드시 그 말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만약 지키지 않으면 (...) 불멸의 신들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벌을 받게 됩니다. 일 년 동안 숨을 쉬지 못한 채로 질식의 고통을 느끼며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 식물인간이란 표현이 저는 좀 불편합니다. 세상 한 가득 온갖 식물들이 새롭게 활발하게 태어나고 자라는 봄이라 더 그렇습니다. ‘의식불명’이 제게는 좀 덜 불편하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서로 간의 믿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을 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고, 거짓말이 난무한다면, 우리 사회는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 그리스 로마인들은 스튁스의 힘을 상상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녀의 위력을 깊게 새겨 넣어 자신의 말을 쉽게 저버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어떤 제도와 믿음이 ‘스튁스강’의 역할를 하고 있을까요?”
법에 명시된 범죄를 저질러도 그에 따른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해도 무소불위, 면책, 처벌은커녕 기소도 되지 않는 시절이기도 하고, 인류가 집중된 권력으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범죄인 전쟁을 아직 멈추지 못하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환경과 기후에 관해 거짓말을 하던 이들은 이제 모두 침묵 중일까요. 제도와 믿음의 기능이 약해진 건가요. 그래서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인가요.
“포세이돈은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넘어 남의 몫을 건드리다가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분수를 넘어서 오만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휘브리스(hubris)’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일인자는 (...) 자신의 영역에 충실하며 다른 이들의 존중을 받는 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스인들은 그런 태도를 정의롭다고 보았고, 자기 몫을 넘어서는 휘브리스를 경계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다 재질이 아니라고 몫이 아니라고 해도 당사자가 과신, 자신하고 실행하려 들면 설득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당한 몫을 특히 공적으로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최악을 방지할 수 있는 절차적 제도가 민주주이고, 동시에 가장 멍청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 역시 그 절차의 파생물이고 결과물이겠지요.
물론 그 과정에는 ‘정의롭지 못한’ 생각과 행동이 영리하고 현명한 판단이라 믿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선전 선동propaganda이 요란하겠지요.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충실하게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다했습니다. 권력의 분배에 대해 불만을 갖고 반란을 꿈꿀 만도 한데, 자신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자신의 몫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그는 정의로운 신이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하데스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지만 흔히 가질 수 있는 선입견과 다른 흥미로운 의견이 좋았습니다.
“플라톤은 왜 이런 에르 신화를 지어낼 걸까요? (...) 플라톤의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찾는 작품입니다. (...) 소크라테스는 정의롭게 사는 사람만이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의한 사람은 결국 벌을 받고 정의로운 사람은 보상받고 행복해진다는) 에르 신화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된다면, 플라톤이 꿈꾸던 이사 사회,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겠지요. 플라톤은 이런 나라를 ‘칼리폴리스Kallipolis’, 즉 ‘아름다운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 나라인가요?”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아직 5월도 아닌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