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목소리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
버넌 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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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목소리가 현실에 가득하다는 친구의 한탄을 불성실하게 들어 넘기고 오늘은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게 지내리라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살아보려 한다내겐 <사악한 목소리>가 옆에 있다. TV와 포털의 뉴스를 안 보니 친구들만 주의하면(?) ‘사악한 목소리는 문학에서만 만나지리라.

 

무척이나 다정한 분의 손편지!와 함께 받은 선물이다받기 전에 책이 설레고 고대되었는데 손편지를 보는 순간 책을 내려놓았다제목과 머나 먼 대척에 존재하는 막강무적처럼 힘센 다정한 마음을 느낀다나도 누군가에게 가끔 이런 선물을 하며 살 수 있어야 하는데 내 쇼핑의 주종목은 식재료인 듯해 서글픈 시절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만나야 하지만 처음 만난 작가의 짧은 소개가 지나치게(?) 흥미로워 하루 총 온라인 사용시간 제한을 어기며 찾아지는 대로 이것저것 읽어 보았다작가의 전기나 자서전이 있으면 읽고 싶다시대와 현실과 불화하는 방식이 비상처럼 자유롭고 가뿐해서 무척 놀랍다.

 

프랑스 볼로뉴에 살던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스무살 이전에 본명 대신 필명을 사용했고열네 살에 프랑스어 소설을 스위스 신문에 발표했고런던에 여러 차례 방문했고공공연히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고남자처럼 차려입고 유럽 전역을 여행했고반전주의자였고오랜 세월 몇몇 여성들과 내밀한 관계였으나 레즈비언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했고예술 저서소설을 출간했고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났다.

 

There is in one’s own jottings something curiously unique; and after a lifetime spent in working on my own notes, I still sometimes catch myself feeling as if such manipulation of them came between me and my real self. Vernon Lee

 

출처: The Paris Review "Between Me and My Real Self : On Veron Lee"

https://www.theparisreview.org/blog/2018/04/03/between-me-and-my-real-self-on-vernon-lee/

 

삶은 미지의 목표점으로 가는 여정이다궤적을 움직이는 우리는 끝없이 복잡하게 가로지르고 또 교차하는 길들을 다 파악할 수 없고우리가 스스로 제작하는 지도는 공상에 빠진 아이들이 끼적거린 낙서에 불과하다.”

 

규정과 경계를 싫어했던 삶이 작품 여기저기에서 보인다확신과 과신 혹은 무지와 오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판단하게 하는 캐릭터 구축이 영리하고 재밌다에너지 레벨이 다른 여러 인물들이 부딪히는 장면들이 무척 공감이 간다과다한 쪽의 의처증무력한 쪽의 권태...

 

조금만 아파도 혈압이 80/40으로 내려가고 체온도 35.3도가 되어간호사가 헉 놀라 쳐다보는 일이 빈번한 나는... 겨우겨우 에너지를 태우며 살다가화가 나면 기운이 없어 더 서늘해지고 좌절하면 무기력의 나라로 곤두박질친다침잠하는 여성 인물에 몰입하는 일이 외롭지 않고 좋았다.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열정도 이성과 냉철함도 모두 갖춘 듯 굴던 남성들이 망상에 휘둘려 망가지는 과정에서여성 캐릭터들의 조용하고 영리하며 무자비한 역할에 감탄도 하고 웃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했다천재다때를 노려 결정적인 한 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란 이런 거군.

 

남성들이 자신에 대한 과신과 상대에 대한 과단으로 말미암은 지옥도를 보는 듯하다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리다 미쳐가는 욕망의 담지자들최고의 번역은 번역이라는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무척 고마운 일이다.

 

대중영화에서 사용되는 기법의 꺅수준의 공포가 아니다답답하고 갑갑하고 울화가 치미는 모든 분들이 읽으시기를일상이라는 유일한 삶의 전면적인 전복은 어지럽고 두렵고 무섭고 위협적이다절망이다서늘한 공포다총 세 편!

 

아무르 뒤르Amour dure, 뒤르 아무르 Dure 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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