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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김광기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카프카의 작품을 우연히 읽고, 이방인과 소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래 전에 생각해본 주제이지만 당시에는 논문만 읽고 토론만 한 기분이다. 그런 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구체적인 스토리와 일상이 없어 지금도 텍스트 정보로만 떠오른다.
개념 설명은 여러 개일 수 있으나, 내게 가장 포괄적이자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소외’란 낯설지 않아야 하는 대상이나 환경에서 낯설게 느끼거나 낯선 존재로 취급 받는 것, 이란 정의이다. 주객전도로 거칠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이 설명을 이해하고 현상을 보면 당혹스럽고 황당한 많은 것들이 왜 그런지 부분적으로 설명이 된다. 근현대를 살면서 인간은 주체에서 밀려나 자신이 상상하고 물질화시킨 많은 체제 속에서 객체, 대상, 소모되는 노동력으로 소외되어왔다. 정교하고 비싼 멍청함이라고 해야 하나.
한편, 인간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데려다 놓는 선택을 한다. 여행이다. 이사도 유사하겠다. 따져보면 이는 특별하고 간헐적인 일이 아니다. 인간은 평생을 ‘이방인’이었다 토착민이 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다.
태어날 때는 모두가 이방인, 처음 자신이 사는 동네에 나갔을 때도 이방인, 유치원이나 학교에 처음 갔을 때도 이방인...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역시 어떤 의미로는 낯선 세계에 진입하는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이다.
“수많은 가면을 썼다 벗으면서 사는 게 인간이고 그렇게 만든 게 세상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든 오늘이 처음 맞는 새 날이라 낯설지만, 요즘처럼 낯설어서 알고 싶지도 않은 시절을 사는 것은 처음인 듯 힘이 든다. 코로나 판데믹도, 21세기의 침공 전쟁도, 뭐 하나 달라진 것 없는 참상과 폭력과 유희적 살해도, 국가체로서 멀쩡할 것인지 염려되는 대한민국도.
여기저기 흠집이 생기고 금이 가다가, 열도 받고 압박도 받아, 결국엔 한쪽 유리창이 팍삭 깨진 듯 망가진 기분이 든다. 생명체는 파괴를 회피하거나 복원하거나 하는 특징이 기본인데, 그런 걸 하고 사는 지 잘 모르겠다. 귀찮음과 무기력이 대세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별로 없다. 열심히 찾아보자면, 젊을 적에는 상상력이 활발해서 실체보다 더 두려워했던 텍스트들이 술렁술렁 읽히고 이해가 된다는 점이랄까. 이 책에도 등장하는 푸코, 데리다, 라캉... 번역도 큰 몫을 했지만 문해력의 바탕이 될 삶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은 그들의 어떤 문장들을 만나면,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하고 이해되기도 한다. 예전처럼 순수 이성과 지성이 벼린 날카롭고 깊고 선명한 학술적 주장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좋지만 초월이라 없는 세상살이가 한편 쓸쓸하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수학 언어에 익숙하다는 것이 나도 모를 사회적 안정망에 속하게 해주었다는 것도 배운다. 운이 좋았다.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고, 제 자신도 때론 낯설고, 오래 알던 사람도 낯설고,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도 모르겠고. 묘한 관계성이다.
- 그렇다면 이방인이 되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 이방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 자연스러울 정도로 어떤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푸코의 주장처럼 위해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생각’ 품은 것만으로 인간은 상대를 모멸하고 배제하고 차별하고 언어적으로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고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 행위를 인지의 기본 단계부터 설명해 주어 덕분에 사유의 길을 걸어 보았다.
‘같은 사람’을 어떻게 저런 취급을 하는가, 는 의문은 바로 그 같은 점이 있는 존재라서 그럴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고찰을 배운다. 외계인을 차별하고 소외시키기란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상대의 미묘한 차이를 표적화하여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건 늘 끔찍하다.
자신으로부터, 서로에게서 한순간 낯설어지는 모두가 당면하는 관계성과 사회적 우연성을 잘 인지하자. 우리 모두를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갖는 이방인이 되자. 그물을 넓히려는 찢고 도망가려는 이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