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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 - 미니멀리스트 단순한 진심의 소소익선 에세이
류하윤.최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3월
평점 :
이사를 하면 일부러 몰래 숨겨둔 것처럼 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주택에서 처음 아파트로 이사하며 절반 정도의 짐을 줄인 부모님 댁 3년 만의 이사에서도 다시 정리할 짐들이 나왔다. 아이들 둘을 키우는 집으로서는 짐이 너무 없다 싶은 미니멀리스트 지향인인 동생네가 십 년 만에 이사하는 과정에서도 줄일 짐들은 적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나면 그나마 노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물건들의 총공격이 임박한 듯 무섭기도 하다. 이런 나름의 자잘한 애씀과는 달리 24평 단독주택에서 8평 원룸으로 이사하며 가구와 가전 등을 90% 줄인 이들이 있다. 유튜버이자 첫 에세이인 이 책의 저자들이다.
신기하고 자극적이고 새롭고 유혹적인 아이템들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 명료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고 조용하게 하는 유튜버 방송이 가능하구나 살짝 놀라고 많이 반가웠다. 목소리가 큰 이들이 떠드는 세상을 망치는 선동들에 지친 지금은 더 그렇다.
속지 않으려 아등바등한다고 변명해보지만, 힘들고 지치는 건 마찬가지다. 정신을 붙잡는 건 일상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자주 말하면서도 생활공간을 더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정해진 곳에 정리된 일상이 헝클어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저자들이 ‘비효율적으로 삽니다’하고 하셔서... 나는 또 생각이 많아진다. 효율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품위를 지키려고 애를 쓰느라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표현하진 않지만, 말이든 글이든 한 번에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상황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니까 나는 기능적 인간으로 훈련되고 그렇게 오래 살았다. 알지만 당분간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도 아주 강고하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 늘어지는 것도 심정적으로 힘들다. 그렇다고 일일이 나서서 스스로 처리하고 잔소리하는 것은 해서 안 될 일이란 생각도 하니 참는다. 참을 줄 알아서 천만다행이다.
“그날의 기억엔 원망도 있었지만 사랑도 있었다. 10년 전, 엄마의 사랑이 너무 당연했던 그때 나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에 '사랑'이 아닌 '원망'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그런데 원망을 내려놓고 보니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이런 하소연이 늘어지는 것이 저자들이 딱히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계속 질문이 생각나게 하는 화법이다. 무척 조심스럽고 수줍어하며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때문에 얼른 동의하고 싶은 기분마저 든다. 생활만 미니멀한 알맹이를 남긴 게 아니라 생각도 글도 그렇다.
“그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정도를 조절해가면서 내 몸이 편안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밖에는. 이제는 내 삶을 ‘꾸미는 삶’ 혹은 ‘꾸미지 않는 삶’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는다.”
고민도 이렇게 소박하게 겸손하게 기쁘게 사랑스럽게 여유롭게 할 수 있구나. 언론 정보를 거의 차단하고 살면서도 언론 정보에 불을 뿜듯 휘둘리며 사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 내 자리, 내 일, 내 삶에 알맹이들이 빠진 걸까. 내용물이 없는 빈 박스가 무참히 구르는 장면이 스친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의 인정은 받지 못해도 가까운 이들로부터 진심 어린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자기를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소신 있게 따르는 사람이다. 그들의 눈빛은 또렷하게 빛나고,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으며,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삶을 살아간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도 그런 아름다움을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소 클리셰 같았던 프롤로그 문장들을 일독 후에는 진심이구나 한다. 먼저 읽은 친구의 말대로 이 에세이는 나를 수신인으로 한 편지글 같다. 유연하고 단단하게 살고 싶어졌다고 답장을 보내고 싶은.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해서 억지로 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의 소리를 따라 몸과 마음이 편안한 쪽으로 흘러왔을 뿐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우리 삶에 불필요한 물건뿐 아니라 마음을 짓누르는 과거의 기억,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시선, 걷잡을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을 덜어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알맹이만 남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