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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ㅣ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평점 :
1
‘먹이’를 받은 건 평생 처음인 듯... 묘한 기분...
처음에 대해서는 늘 설명할 어휘가 부족해진다.
‘병아리콩’이길 기도했는데
‘병아리콩’ 팀이 되어 기쁘고 즐겁다.
어느 영화처럼 갇힌 채... 병아리콩 - 정확히는 후무스hummus- 만 먹으라고 하면
아주 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좋아한다).
책은 안 읽고 먹이만 만들어 먹었다.
책은 무척 재미있을 것이 자명해서 아껴 읽을 거다.
“꿔보” 등장~
아~ 넘 빨리 읽었다. 아끼자~
2
꿔보테스트를 했다. ‘신중한 단독자’나 ‘위대한 꿔보’를 꿈꾸며 신중하게 임했으나... 온화한 사회인’이 나오고 말았다. 고칠 답변이 있나 고민했지만 11개 이상으로 올릴 수 없었다. 온화함... 사회인... 갑갑하구나...
2000년 전부터 주로 채식을 했고 이후 7-8년간 영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노력하다 울화증에 병원을 들락거렸다. 채식이 가능한 식당을 찾기도 힘들고, 채식 메뉴를 주문하거나 한 가지 재료를 빼달라고 해도 염려가 크신 사장님들이 육류를 몰래(?) 숨겨서 먹이려 드는 통에 매끼 먹는 것보다 소모되는 칼로리가 더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
젊어서 막무가내 원칙적이고 고집스러웠던 탓도 컸다. 웃지 않으면 ‘정색’이 기본 표정인 것도, 주말에 막 놀고 있는 중에도 자꾸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도 상대의 저항을 더 높이는 데 한 몫 한 듯하다. 여러모로 태도가 건방졌을 것이다.
지금은 비건이지만 누가 뭘 먹으라고 주면 비건식이 아니라고 해도 화들짝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고 감사히 받아 남김없이 먹는다. 나이 들어 좋고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점들 중 하나이다. 한 끼에 내 원칙을 걸고 지키는 일보다 먹을 것을 주는 상대의 호의와 마음이 중요하다. 시간을 내어 애써 만들어준 노고에 깊이 깊이 감사한다.
저자의 농사짓는 부모님이 집채만한 채소 식재료를 주신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한 친구는 여러 해 시부모님이 보내 주신 콩을 감사히 먹었는데, 어느 해 심을 철에 가보니 제초제 시원하게 뿌리신 땅에 심으시더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고령이신 분들은 힘이 약하시니 오히려 농사지을 시 여러 약품의 도움을 많이 받으신다.
미각세포가 예민한 사람들은 채소맛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라면 나는 어릴 적에도 미각세포가 둔했나 보다. 달달한 것들도 떡볶이도 안 좋아했다. 슴슴하고 고소하고 아삭거리고 향긋한 것들이 좋았다. 집채만한 채소... 나는 아작아작 잘 먹을 수 있다. 봄이라 봄양배추를 매일 사각사각 애벌레처럼 먹고 산다. 행복하다.
앗! 그러고 보니 저자처럼 ‘콩’을 어릴 적엔 좋아하지 않았다. 최초의 기억은 없지만, 내내 콩은 맛이 없어, 난 콩은 안 먹을 거야... 란 생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다 로마에서 친구가 사는 피치니스코Picinisco를 찾아 가던 중에 산 속 도로 옆 작은 식당에서 가능한 메뉴가 ‘콩스프’ 밖에 없어 먹었는데... 머릿 속에서 불꽃이 터지듯 맛있었다! 이탈리아에선 콩도 맛있는 거냐고 분노했는데 생각해보면 콩스프를 전에 먹은 적이 없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알레르겐이 적지 않은 몸인데 콩은 괜찮다. 이후로 콩을 막(?) 먹기 시작했는데 맛있는 콩들이 엄청 많았다. 지금은 풋콩(자숙대두, 에다마메) 철이라 설레고 즐겁다. 그래도 하루에 혼자 400g을 먹어 치우는 건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아니면 못 느낄 보드라운 식감과 향이 엄청 맛있다. 조리법은 끓는 물에 3분 삶고 끝!
예전엔 이집트에서 수입된 병아리콩만 구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국내 재배된 콩도 구할 수 있다. 탄소 마일리지가 줄어들어 죄책감도 줄고 더 맛있게 먹는다. 워낙 좋아하니 대량 구매해서 삶아 소분해두고 꾸준히 먹는다. 나는 병아리콩으로 유지되는 생명체이다.
이 책을 지난주에 받고 읽을 생각은 안 하고 ‘먹이’로 후무스hummus만 만들어 먹다가, 내일은 수요일이고 비소식도 있어서 병아리콩 커리를 미리 만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더 맛있어지지만 참지 못하고 한 그릇했다. 딱 좋아하는 색감과 맛... 행복하다.
그나저나 채소와 콩의 과잉 섭취로 방귀가 많이 나온다는 건... 내 경험과는 다르다. 나는 가족들이 너는 왜 방귀 뀌냐고 궁금할 정도로 미미한 가스배출인인데, 그 이유에는 쾌변도 있다. 경험상 채식을 하고 생야채를 섭취하면 매일 악취 없는 배변이 가능하다. 나쁜 냄새가 나는 경우는 타인의 감사한 호의로 음식을 먹은 다음날이다.
헉! 너무 많이 읽었다. 웃기고 재밌고 짠하고 멋지고 다 하는 책이니 그만 읽고 아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