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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직업 - 단절된 꿈을 글로 잇는 삶 ㅣ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유성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신춘문예 당선작 원고 제목이 <인테그랄>이다. 당연히(?) 나는 적분부터 떠오른다. 수상 작가의 에세이집 제목은 혹... ‘나를 적분하는 직업’일까... 하는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곧 정신을 차리고 ‘나를 완성하는 직업’ 정도로 다듬긴 했다. 출간된 제목은 더 신나는 ‘나를 찾아가는...’ 이다.
“나는 길을 걸으며 잠시도 꺼놓을 수 없는 엄마의 삶과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의 비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인테그랄’이 등장한 것만으로 기분이 좋고 애정이 치솟은 독자의 호감이 미리 포진하긴 했지만, 받아든 책은... 얼마나 오래 관찰했으면 이렇게 정직하고 정확하고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느낌이 무한대를 향했다.
진한 감정은 모두 정화시키고 결곡하게 다듬어진 문장들을 만난다. 나는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읽다가 문득 대책 없이 크게 웃어서 작가에게 죄송하기도 했고 독자로서 나의 뇌기능에 무슨 문제가 있나 싶기도 했다. 취향 발견의 발작적 기쁨...?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출산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사랑이 제도화되어 물적 행위로 변모하는, 추상이 가시화되는 과정이 한 문장에... 말끔한 방정식 풀이 과정처럼 정리되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 그래프는 이제 무한정 넓어지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적절한 평행선을 그리며 안정적인 면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늘 집합문제 풀이로 자신의 연애를 설명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난 그래프쪽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아니, 엄마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지난번에 네가 유치원의 꽃을 딴 행동은 ‘잘못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남이 딴 꽃을 던지고 밟는 건 확실히 ‘나쁜 행동’이야.”
저자의 개념분석과는 다를 수 있지만 덕분에 오래 전 재밌는 토론 장면이 떠올랐다. ‘잘못’이란 실수를 포함한 어리석은 행동blunder이고, ‘나쁜’이란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는harmful 행위라는 것. 반갑고 즐거운 문장이다.
“나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나이 들수록 ‘세계평화와 환경보전’이 더 선명하고 간절해지는 바람이 될지 몰랐다. 미인대회 수상소감으로 희화화되던 것인데. 아찔한 디스토피아가 떠오를 때마다 일상을 이어가는 모든 결기가 꺾인다.
“내가 한 작업은 창작이라기보다 일상 속에 숨겨진 '단서'를 내 언어로 옮겨 적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어불문학 전공이고 실존 연구를 내내 한다고 했는데, 내게 저자는 자연과학전공자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자연과학은 내 감각기관을 통해 관찰한sensing 정보들을 수학언어로 옮겨 분석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다.
첫 책이라는데, 한 권을 웃을 때 빼곤 엉덩이도 안 떼고 다 읽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군더더기라곤 없는 편안한 글이 정신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느낌이다. 문학이란 신비롭고 강렬한 존재다. 어제까지 전혀 모르던 이의 삶과 글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나는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대단한 사람이어야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기댈 곳 없던 내 삶을 글로 표현할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감상은 부족하고 필사만 많은 독서이다. 워낙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다. 다음 책은 언제쯤이나... 출간된 줄 몰랐던 윤성은 작가의 책이 열권쯤 있으면 좋겠다.
! 손글씨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습니다. 단단하고 단호하고 힘차게 전해주신 희망을 무조건 믿으려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희망도 내내 인테그랄integral하길 바라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