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우리 모두를 함께 찾아보자

침묵에서 말하기로 -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캐럴 길리건 지음, 이경미 옮김 / 심심 / 2020년 12월

이 책의 출간년도는 심리학계에서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도덕 발달 기준 등을 연구, 교육, 정치적 고려의 대상으로 둔 것도 불과 40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원제의 voice는 여성의 목소리의 부재 혹은 남성의 목소리로만 전달되던 상황에서의 대안과 제안을 뜻한다.

가부장적이지만 체벌과 성차별 발언 없이 자식을 대한 아버지, 눈치가 없다는 건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여성성과 여자할일에 대한 강요 없이 전공을 택할 수 있었던 것, 순전히 운이 좋아 남성이 절대 다수인 사회 환경에서 성폭력과 성범죄를 경험하지 않았던 것.

내게는 ‘여성의 감성과 언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것은 내가 남성의 언어, 학문, 문화, 사회에 순종적으로 적응하고 동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유상종이 편한 법이라 전혀 다른 경험과 이야기를 전해 줄 친구들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피로감이 덜한 일상을,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한 일상을 살아왔다.

백인 남성을 위주로 이루어진, 여성을 배제하고 누락한 도덕발단단계를 발표한 콜버그의 이론을 비판하며, 길리건은 ‘남성은 독립과 자신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여성은 상호 의존성과 타인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에 마주했을 때 남성은 정의롭고 공평한 해결책을, 여성은 보살핌과 자애로움의 해결책을 모색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정성적(qualitative) 연구들을 수행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이, 딜레마 연구, 임신 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등을 예시했고,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인 관계에 주목한 새로운 여성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을 질문으로 바꾸어 자신의 대답을 찾아보면 좋겠다.

- 여성은 타인과의 애착과 연결의 맥락 속에서 발달하는가.

- 여성은 소속과 관계를 형성하고 친교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자아의식을 형성하는가.

- 관계의 파괴란 관계의 소실만이 아니라 자아의 총체적 상실에 가까운 것으로 많은 여성들이 인식하는가.

서로 다른 경험과 도덕 발달 내용을 가진 여성과 남성은, 직장, 결혼, 가정이라는 생활공간과 관계에서 어떻게 만나고 영향을 미치고 차이를 인지할 것인가. 길리건은 남성과 여성이 1.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2. 비슷한 용어일지라도 자아와 사회관계를 다른 경험으로 암호화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모두에게 언어가 있고 표현이 가능한 것처럼 들리지만, 청년기 여성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과, 자신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킨다. 그리고 침묵은 강화된다.

여성의 도덕적 명령은 ‘돌봄’, 문젯거리들을 분별해내고 완화시키는 책임을 지는 일, 남성의 도덕적 명령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삶과 자아실현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거듭 드러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

‘출생률’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남성들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언어가 의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출산률’이 여성에게 지우는 관계와 돌봄의 의무를 모른다는 것이다. 과하게 부과되는 비겁함도 잘못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침묵하지 말자. 말을 하고 글을 쓰자. 목소리를 찾자. 남성의 기준과 규칙과 기타 등등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는 평가에 길리건처럼 애초에 대상과 방법과 기준이 틀렸다고 말해보자.

“내 질문은 현실과 진실의 인식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 어떻게 듣는지,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말하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내 질문은 목소리와 관계에 관한 것이며, 또한 심리적 과정과 이론, 특히 남성의경험이 모든 인간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이론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그런 이론은 여성의 삶을 삭제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걷어간다. (...) 남성은 여성을 배제했으며 여성 또한 자신을 배제했다.”

캐롤 길리건이 전한 현실과 진실의 인식, ‘여성 배제’는 여성 존재를 감추고, 가리고, 숨기고, 지운 것, 비존재nonexistence와 멀리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 하재영 작가님의 편지 <나의 호두나무 책상에 대하여>를 읽었고, 다음으로 리베카 솔닛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Recollections of My Nonexistence>을 읽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우리 모두를 함께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