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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 조선 오백 년(중)
박철홍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2월
평점 :
‘고려 말부터 흥선대원군 집권 전’까지의 내용을 다룬 ‘상 편’은 안 읽어 보고 ‘중 편’을 만났다. 시대별로 구분을 해주셨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구한말’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흥선대원군 집권부터 경술국치’에 이른다(1863-1910, 47년). 가장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 되는 지라 읽고 배울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시절이 혼란스럽고 그 사회구성원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시절에는 어떻게 살아라, 옳다 그르다, 란 판단과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혼돈의 시기에 개인이 원칙을 세우고 결심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에도 결기있게 공익을 위해 사신 분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것이고, 살기 위해 적당히 시대에 조응한 것이 아니라 일신의 이익을 위한 기회를 보고 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팔고 피해를 입히고 죽이던 이들이 끔찍하게 대비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위인처럼 의기 있게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상상만 해도 무섭다. 연기도 협박도 아니고 잡히면 맞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현실인 것이다. 비겁한 나의 변명일지 모르나 그래서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하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 나라의 힘으로 어려운 사정도 있겠지만, 책임자들은 위정자들은 제 나라 땅에서 전쟁이 잃어나지 않게, 사람들이 죽지 않게, 국권을 빼앗기는 일만은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이 정치다.
얇지 않은 이 책에는 구한말의 나라 빼앗긴 혹은 팔아먹은 무능하고 시야가 접시만한 인간 군상들이 가득하다. 현실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라 참 두렵다. 인간의 유형들에는 늘 이런 인간들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희생을 감수하는 독립운동가처럼 살 수 될 수 없으니 나는 나라 망칠, 팔아먹을 인간을 열심히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선기간에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울화가 터지는 일도 많고 분노가 치민 적도 많았는데 구한말 시기도 그렇다. 선거일의 불안감을 싸안고 역사서를 읽고 있는데 감정적 기시감에 복잡한 긴장감이 든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갑신정변에 대한 소회는 새롭다. 실패의 원인이 백성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엘리트 정치인들과 외세가 힘을 합한 위에서부터의 혁명이라는데, 현대의 정책도 외교도 주로 이런 방식이지 않나 해서 새삼 놀란다. 어느 시대이건 준비가 부족한 행정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타국에 대해 게으른 신뢰를 하고 배신이네 원망하는 멍청한 일은 읽기에도 민망하다.
자주독립국도 외교는 생존에 필수이다. 의지도 말고 믿지도 말고 자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생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개선하는 역할은 예술의 경지와 복합적인 지식의 총체적 역량으로 가능할 일일 것이다. 안 되면 죽어나는 건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백성들과 시민들이다.
지원 가능한 무기라곤 흙덩어리 포탄뿐인 청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어 모시고 호가호위하던 구한말 정권은 알면 알수록 괴롭다. 스스로도 치욕을 당하는 강도는 높아만 가는데... 아관파천은 그냥 도망갔다는 뜻이구나. 강대국들이 강요한 것도 아닌데 자청해서 간...세계사에 유일무이한 일이라니 유구무언이다.
조선최초의 친러 내각이 구성되면서 일중독자가 아니었나 싶은 우두머리 이완용을 위시한 매국노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편을 바꾸어 시대를 서핑하듯 매끄럽게 살아남았고 와중에 대대손손 물려줄 재산까지 마련했다. 심지어 독립협회 회장도 했다.
“한때 대단히 애국적이었던 인물이 어떻게 해서 만고의 매국노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비극적 과정과 변신의 논리를 밝히는 데 있다.” - 윤덕한, <이완용 평전(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중심, 1999
조선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백성들을 속여 먹고 도둑질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혹은 몰라서 대단할 수 있었던 능력이다. 대한제국이 세계 각국의 먹잇감이 된 것은 뭐... 당연해 보인다. 나라를 다 빼앗기는 중에 계속 등장하는 효과 없는 온갖 개혁들이 서글프다.
러일 전쟁 이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교환 조건’으로 승인한다. 이후 ‘제2차 영일 동맹’을 맺고 영국으로부터 조선의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시대는 식민지 찬탈과 나눠먹기를 위한 조약 중 하나인 포츠머스 회담을 체결한 공로로 루주벨트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고민과 힘겨움을 생각해본다. 곧 우리 모두의 미래를 구성할 현재의 선택이 결과를 드러낸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