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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삶을 가꿉니다
소형 지음 / 뜨인돌 / 2022년 2월
평점 :
책상 위나 집을 잔뜩 어지럽힌 상태로 살아도 나름 질서가 있으며 사유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나로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패닉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며 사는 불안증이 있고 생각이 무척 혼란스럽고 생각도 행동도 삶도 일관적이지 않지만 사는 공간만은 정리가 되어 있고 일상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주중에는 수도승처럼 저항도 변명도 없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환기시키고 음악 플레이 하고 모카포트 커피 채워 불 위에 올리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창문 닫고 잔을 고르면 정확히 커피가 완성된다. 어쩌면 걸음수도 오차가 그리 없을 것이다.
사진의 포커스아웃과는 느낌이 아주 다른 그림 작가인 저자의 책을 펼쳐 본다. 미니멀리즘과 정리정돈이라는 주제에 맞게 그림과 글조차 솔직하고 재미있고 간명하다. 꾸밈이 없는 그림 자체가 심플한 일상, 정리된 삶, 전시가 아닌 생활당사자 ‘나’에게 맞는 삶으로 느껴진다. 기쁘다.
부모님 집에 오래 살았으니 내겐 방만 있었다. 유학을 가서는 기숙사방에 살았으니 역시 방이다. 한국에서 취업을 한 뒤에는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어느 해 가만 세어보니 3개월에 5일 정도 머물렀다. 그러니 여행캐리어들이 중요한 가구처럼 놓여 있고 약간의 짐이 있고 세탁을 할 수 있고 씻고 자는... 숙소와 별 다를 게 없는 공간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떠들썩하게 노는 걸 즐기지도 않으면서 집 안에 있는 것도 맞지 않는 유형이었다. 잠을 안 자고 살 방법이 있었다면 반드시 선택했을 것처럼 시간이 아까웠고, 그래서 일찍 일어났다.
새벽에 운동을 가서 일출을 보고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해결하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도 갈 수 있는 곳들을 방문하는 일을 즐겼다. 그러니 집이란 본격적인 생활공간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물류창고처럼 이용한 기분도 든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판데믹 시절이 ‘집’에 가장 오랜 머문 시절이다. 판데믹 여파가 출판업계에 미쳐서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TV는 거의 안 보기 때문에 -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정말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 뭘 할 수 있었을까? 부업? 새로운 취미?
물건을 잔뜩 구매하는 일을 즐긴 적은 없지만 집에 머물다보니 점점 더 공간이 아쉬웠다. 마음에 꼭 드는 물건만을 산다고 했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준 물건들만을 보관한다고 했지만 물건들 투성이였다. 어찌된 셈인지 속옷과 양말을 제외하고는 매년 새로 구입하지도 않는 옷조차 많아 보였다.
매주 책과 물건들을 분리배출하고 기증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물건들이 남아 있는 기현상을 목격했다. 기준을 바꿔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나지 않는 물건은 앞으로도 쓸 일이 없는 물건!
마음이 달달 떨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덕분에 ‘정리’다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에도 구매하거나 선물을 받아 늘어나는 물건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건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나에게 맞는 삶이 무엇일지 집중적으로 고민이 된다. 퇴사하고 귀촌하는 것이 나을까 하는 과격한 생각도 몇 번 해보았다.
나는 적당히 ‘기능’을 하며 사는 일에는 훈련이 되어 있지만 삶을 ‘가꾸는’일은 무엇인지 모르는 엉터리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식주 관리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에 완전하게 공감하면서도 할 줄 아는 건 ‘관리’가 아니라 ‘소비’라는 생각을 한다. 지불능력을 관리능력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소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생산을 통해 형성된다.” 신영복
전문가에 대한 환상이 있고 더 잘하는 사람의 서비스를 사는 일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니 실질적인 생존능력이 참 없을 것이다. ‘삶’을 가꾸는 것이 ‘살림’이라면 무섭도록 무능할 터.
재밌고 메시지가 확실한 책을 읽고 정리정돈과 미니멀리즘은 따라할 수 있는데 삶은 어찌해야할지 여전한 오리무중이다. 일단... 계속 정리 정돈된... 무심한 버릇처럼 이어지는 일상을 유지해보련다.
“아주 작은 습관들이 무너지면 일상이 벗어나고 싶은 혼돈이 된다.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습관들이 일상을 우아하게 유지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