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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질문이 생겼다. ‘누구에게나’가 맞는 말인지, ‘신’이란 무엇인지, ‘필요’란 어떤 방식인지. 내게 종교와 종교인들은 ‘행동’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대상이었다. 소위 근대적 교육을 받으면서 교리와 성서의 내용을 재밌는 스토리 이상으로 믿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있다. 그리고 그 틈이 바로 차갑고 이성적인 삶과 믿음의 삶을 갈라놓는다.“
귀신이든 신이든 유령이든 만나본 적이 없고 - 몹시 만나고 싶었지만 - 놀라고 감동적인 기적들은 모두 사람들이 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지적 우월감을 즐긴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은 무신론자보다 종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모두 나보다 훌륭한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가 없는 것이 훨씬 더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한편으로 인정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실천하는 격려이자 이유가 되는 모든 종교적 믿음을 존경한다. 귀 담아 듣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말과 실천을 하시는 종교인들도 계시니, 내 노후는 한편으로는 과학적 발견에 여전히 즐거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하는 종교인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우리 마음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수많은 소리를 놓치는 것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렇게 수다를 떨어대는 우리 마음이 소리를 상쇄하는 소리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그러니 다른 소리들은 그 앞에서 맥을 못 춘다.“
‘누구에게나’는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묻지 않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 지식의 범위를 한참 뛰어넘는 종교의 숫자였다. 9900가지의 종교들, 매일 새로운 종교가 두세 개씩 생겨나고 있다니!
저자는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을 소환하듯 - Don't worry, go shopping - 미국인답게 쇼핑하듯 종교체험 여행을 떠난다. 이슬람 수피즘, 불교, 가톨릭 프란체스코회, 라엘교, 도교, 위카, 샤머니즘, 유대교 카빌라.
저자의 종교 체험기에 깊이 몰입하기 전에, 나는 힘들 때, 간절히 바란다고 할 때 신을 불렀나. 그것부터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나는 전형적인 해결책 제시형 인간이다. 수족냉증이 올 정도로 심신이 싸늘해지고 바쁘게 생각하고 조사하고 문의를 한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만을 고민해서일까. 많은 것들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하며 살았고, 사람이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일들에 대한 절망을 아주 크게 느끼면서 산다.
“종교는 우리가 세 가지 질문과 씨름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답까지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세 가지 질문이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다.”
에릭 와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있었고 단지 확인이 필요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종교는 질문을 할 뿐이고 신은 방향이라 말하지만 결국 신은 ‘조립’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렇게 자신만의 신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행동 철학으로서의 종교의 유용성을 엿보고 이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동력이 약하고 의지가 휘발이 잘 되어서 종교의 도움으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자꾸 내려놓으라는 말은 반갑지 않다. 거뜬하게 잘 지고 갈 방법이 필요하다.
체험기란 독자와 거리가 상당히 먼 장르가 될 수도 있다. 체험 당사자만의 기록이라는 느낌이 한편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니라 ‘종교가 우리를 택한다’는 말이 구원처럼 들린다. 할 일을 하며 기다리는 일은 잘 할 수 있다. 꼭 선택된다는 확신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