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라이프 -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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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담당의 하야카와는 인간은 어딘가에 자기가 죽을 시기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수많은 시한부 환자들을 만난 경험이니 그럴 것이다. 거짓을 말한 이유도 없다.

 

내가 바라는 것들 중에는 부디 죽을 시기를 알고 싶다는 것도 있는데, 그건 마지막에 신나게 살아 보겠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는 분들을 뵈어서 그렇다. 특히 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께서는 평생 자세와 표정조차 단단하게 유지하셨던 분인데 임종의 순간조차 더 이상 단정할 수가 없었다.

 

고가의 집을 안팎으로 반들반들 관리하며 사셨고, 언제 방문해도 머리칼 하나 흘러나온 모습을 뵌 적이 없다. 노후에도 자식과 합가하길 끝내 거부하시고 혼자 정정하게 지내시다, 임종 전날 유품 정리, 청소, 목욕을 모두 혼자 하시고 새벽에 아들에게 전화를 거셨다. 이제 갈 때가 되었으니 빨리 오라고. 옛 분들은 부모 임종 못한 자식은 불효가 크다고 여겨서 가장 마지막까지 그 걱정이 있으셨던가 싶다.

 

잠도 덜 깬 채로 달려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에 뛰어 들어가 보니 반듯하게 이부자리에 누워계셨다고 한다. “도착했으니 되었다하고 다른 말씀 없이 손을 잡은 채로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이 차분하게 거짓말 같은 상황을 믿을 수 없어 평생 처음 시어머니를 안고 흔들었다고 했다. 일어나시라고. 따뜻한 체온의 부드러운 몸인데 눈앞에서 방금 생명이 사라진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상례를 치르면서 떠나신 얘기를 하니 친지들과 동네 분들이 크게 놀라지도 않으셨다. 그런 일이 예로부터 없지는 않다고. 자신이 알려 준 날짜에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간혹 계신다고.

 

가능하면 나도 큰 폐를 끼치지 않고 당신처럼 그렇게 단정하게 떠나고 싶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놓았는데도 이것저것 걱정이 많다. 그래서 이번 편의 여러 사람들이 마지막을 감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든 문장이 시험지처럼 읽혔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벚꽃 보실 수 있겠어요? 힘내실 수 있겠어요?”

…….”

그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르더니, 이윽고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못 보는구먼.” (...)

데구루루, 하야카와는 진실이 소리를 내며 환자의 품속으로 굴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하야카와는 앞으로도 수많은 환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을 것이다. 시한부 진단을 받은 이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할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을 테니까. 환자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의사의 질문을 접하고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의식인 셈이다.

 

나는 확실히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감사할 바가 크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 역시 크다. 건강을 해치는 것들을 고집하지도 않지만, 병도 죽음도 계획과 노력으로 예측 가능한 결과인 것만은 아니니까.

 

가족도, 간병인도, 간호사도 해줄 수 없는 게 있어요. (...)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남은 시간을 성의를 가지고 생각해주는 의사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상황이 크게 달라져요. 본인 뜻에 반하는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것, 임종 직전에 의식을 어느 정도 유지하도록 할 것인지도 최종적으로는 의사의 판단이 영향을 끼쳐요.”

 

이 사람이라면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겠다, 이 가족이라면 환자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다. 그렇게 판단했다면 가능한 한 환자의 의식이 맑게 유지되게끔 해요. 하지만 (...) 가족과 사이가 나쁜 사람, 통증 때문에 패닉에 빠지고 괴로워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의식 수준을 떨어뜨리도록 컨트롤해야 해요. 환자와 의사간에 신뢰 관계가 없으면 못 할 일이죠.”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의사의 권한, 재량권, 결정권이 일본이 더 클 것 같단 생각을 한다. 판데믹에 샅샅이 드러나고 기록된 한국의 의료현실이 개선만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되길, 변화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길 다시 바라게 된다. 인프라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의료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 테지만.

 

환자의 인생관을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적합한 마지막 시간을 만들어주는 의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선고를 받는 측은 그 순간 가장 가혹한 말을 전해 듣는다. (...) 우리가 맞이하는 마지막 시간은 어떤 생각을 가진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임종과 관련된 일들을 의료 관계자에게 통째로 맡겨버리는 것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의사도 인간이다.”

 

옷을 살 때는 입어본다. 머리를 자를 때는 마음이 잘 통하는 미용사에게 맡긴다. 그런데 우리는 의사가 어떤 생사관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남은 감정도 잔상들도 적지 않다. 고민은 더 복잡해질 수도 깊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에도 재택의료가 시작된다고? 하며 놀랄 지도 모를 일이다. 번다한 일상과 정신으로 생의 끝과 죽음을 잘 준비하며 살지 못한다. 그래서 바라는 마음이 자꾸... 게으른 기도처럼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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