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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당신이 커피에 관해 알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개정증보판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커피 좋아하는... 실은 중독인 사람들은 모두 읽고 싶을 책이다. 오전에만 커피를 마시는 나는 주말 오전에만 읽을 수 있었다. 주중에는 수도승처럼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모카포트를 올리고 주말에는 의지로 루틴을 헝클어보는 패턴의 일상을 산다.
커피의 발상지, 광풍이 일어난 시절, 홈쇼핑 광고처럼 들리는 과장 광고 등등,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고 커피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느껴진다. 현재까지 이어진 계급과 식민지에 관한 이야기는 무거운 마음을 더욱 짓누르기도 한다.
운이 좋아 북반구에 태어나서 나는 커피 소비자로 살지만,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어느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대농장에서 땀을 피와 섞어 흘리면 노예처럼 일하며 살았을 것이다. 커피콩에는 식민지, 독재, 내전, 자연재해, 투기 등등 국제정세가 다 담겨 있다.
그나마 공정 무역과 생산자의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며 일부 생산자들의 삶도 바뀌는 중이라지만, 산림 파괴와 수질 오염 등의 문제도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버드 프렌들리’ 커피에 대해서도 홍보가 많이 되면 좋겠다.
입맛이야말로 누가 뭐라 할 수도 없고 설득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특히 ‘커피’라고 단일 재료처럼 부르지만 그 맛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커피에 대한 의견도 설명은 못지않게 많다. 나는 ‘산도가 높고 향이 풍부하며 깔끔한 풍미’의 맛을 좋아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커피를 주로 고지대 중앙아메리카에서 전통적으로 키웠고, 여러 가지 나무를 이용해 그늘 재배로 길러서 습식법으로 콩을 수확했다고 한다. 다만! 인증 받은 유기농 커피조차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니... 그동안 수질오염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미식가도 아니고 탐미주의자도 아니고 극한의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전쟁 시 군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지참한 생두를 갈아 마신 커피 한 잔의 맛과 가치는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전쟁 시에 여러 기술이 폭발적으로 개발되는데 인스턴트 커피 역시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탄생했다.
“1930년대에 닥친 세계 대공항으로 인해 그 뒤로 수년간 커피는 물론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하락하고 대량 실업에 시달리는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 검은 음료를 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50
“미국 시민들은 커피 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왜 그렇게 어김없이 흥분했을까? 그런 소동 뒤에는 라틴아메리카인과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외국인 혐오가 깔린 불신이 숨겨져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577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먹거리를 재배하는 이들이나 그 먹거리가 유래되는 생태 환경과 다시 소통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625
내게 커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즐거움만큼 죄책감도 느끼는 대상이다. 특히 며칠 전엔 전 세계 물이 카페인과 약품에 오염되었다는 분석 결과를 보았다. 고민이 많은 와중에 이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주말에도 기꺼이 굴복하는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다.
무척 계산적인 성격이라 쾌락보다 고통이 커지면 잘 포기한다. 그런데... 커피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봐 두렵고 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차를 마시는 친구들의 근황이 부쩍 궁금해진다. 그동안의 추억을 뒤적여 보고 올 해 안에는 꼭 결정해야지...
“커피 한잔. 7유로”
“커피 한잔 부탁합니다.”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부탁합니다.” 1.4유로
출처: 경향비즈 곽원철 칼럼. 화제가 된 프랑스 카페의 가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