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라이프·디자인
기디언 슈워츠 지음, 이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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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Hi_Fi : The History of High-End Audio Design>이다오디오 디자인의 역사이다. Hi-Fi란 (다들 아시겠지만) High Fidelity, 즉 오디오의 품질을 원음에 충실하게 하는 목적을 가진 엔지니어링의 개념어이다그럼에도 소리의 품질과는 괴리가 컸던 상품들도 많았고 그 이야기도 재밌을 것이다아마추어라서 멋진 디자인의 오디오 사진들 생각에도 충분히 설렌다.

 

내게는 복고나 레트로가 과거의 재유행이 아니라 그냥 내 시절의 삶이라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의 장면들이다그래서 복고 역사 속에 사는 인물이 된 기분도 든다책을 처음 만난 인상은 역사서라면 더 분량이 많아야하지 않나책이 작고 기대보다 얇아서 놀랐다원서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가격 차이가 크다.

 

아침부터 음악 고르고 -결국엔 늘 듣던 Tune으로 결정 - 2022년 현실에서 가장 애정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고 있지만기분은 두근두근오디오의 탄생과 성장과 갖가지 일화들 속으로 푹 잠기는 듯 좋다과거역사기록에는 아쉬움그리움 늘 어떤 종류의 슬픔이 함께 하지만새로운 발명과 기대와 애정으로 가득한 일화들에 무척 유쾌해진다.

 

역사적 경험이 달라서 시간차를 느끼며 읽는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절이지만미국에서는 광범위한 팝클래식재즈 음악이 방송국을 장악했다. FM 방송국이 독립 활동을 하며 음악 품질이 우수해지고주파수가 88~108메가헤르츠로 확장되었다.

 

튜너콘솔앰프 등의 기술 발전과 소비자 수요가 늘어가는 19070년대까지의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CD와 LD가 출현한 이후에 다시 진공관이 돌아왔을 때야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1959년에 이미 진공관 앰프가 유행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지금 세대가 느끼는 복고레트로의 느낌을 조금 맛본 기분이다.

 

1960년대 반도체의 등장으로 외관과 디자인이 실용적이고 편의성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절에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에서 아쉬움이 있다당시엔 또 다른 미감과 미학이 중심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이 LP를 즐기셨다면 나는 아무래도 카세트와 테이프로 십 대의 음악을 가장 많이 만났다기술 개발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서 곧 CD가 등장하긴 했지만. ‘공테이프에 원하는 음악들을 잔뜩 녹음해서 서로 선물하던 기억들은 여전히 최고다.

 

CD의 음질과 감성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많았다. HI-FI라는 본래의 목적에 바짝 다가간 것은 맞는데도그 깨끗함이 초기에는 왜 불편하게 들렸을까집중을 요하는 시간에도 백색 소음이 있는 환경을 더 편하게 느끼며 오히려 능률이 오른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1990년대 진공관의 부활 소식은 1990년대 세운상가에서 진공관을 구경하던 내 시간과 드디어 만난다디자인은 초소형이고 음질은 뛰어난 펜 모양 녹음기를 구하러 간 것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당시에 3,000만원이 넘는 진공관을 구경하고 있었다물론 구입하진 않았... 못했다.

 

그 다음의 시절은 나로선 종이책이 전자책의 텍스트로 변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MP3의 등장이다뭔가... 음악을 담은 장치의 물성이 사라지고 음악 역시 데이터로 기록되었다는 그 느낌좋아하는 음악을 수천 개나 담아 언제든 들을 수 있는데도... 아주 오래 거부했다.

 

진공관이 돌아온 것처럼 LP도 부활하고복고와 레트로의 열풍에 실려 음악의 매체도 기기도 감상 방식도 애정의 중점도 참 다양해졌다여러 해 전부터 누군가는 LP 회전판으로 음악을 감상하고누군가는 최신 오디오 시스템과 최고성능의 스피커를 구해 듣는 일에 비교가 불필요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기술과 디자인의 역사 모두를 모른 채그 순간의 취향에 따라 기기를 고르고 음악을 선택했지만,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서 살아볼 수 있어서 참 재밌고 좋다이 책 덕분에 재미난 기술 개발과 실험을 한 엔지니어들을 따로 찾아 볼 수 있었다.

 

얇은 편이라고 생각한 이 책에 1877년부터 2022년까지 145년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니모든 사진이 귀한 기록이라 느낀다음악이 산업과 만나 어떻게 대중적으로 배급되어왔는지그 과정에 참여한 연구자들과 디자이너들사업가들... 그들 모두의 협업으로 어느 저녁 나는 마을을 간질이는 음악을 편히 들었구나 그런 생각도 처음 해본다.

 

미국을 중심으로 둔 역사서라 읽을수록 애플 폰을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한류에 빠질 수 없는 분야가 음악과 음악예술인들이니 한국의 오디오 관련 역사서도 언젠가 쓰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그 책에는 촘촘하게 그리운 추억이 한 가득일 것이라 무척 고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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