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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눈의 결정 모양들, 그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스밀라는 그 덕분에 그린란드에서 겨울철 이동 때 일행의 경로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극히 현실적인데 동시에 판타지 세계와도 같다. 이누이트어에는 눈을 가리키는 말만 30가지가 넘는다.
그 능력으로 눈 덮인 지붕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보이는 현장을 보고, 눈 위에 남긴 발자국만 보고 사건을 파악해낼 수 있다. 눈이 누설하는 살인의 흔적이라니! 색채가 없고 녹아 사라지면 보존할 수 없는 대상이라 마음이 무척 아슬아슬했다.
주된 구성은 의문을 죽음을 파헤쳐가는 과정인데, 아주 치밀한 추리 미스터리일 뿐만 아니라, 문장들은 뇌훈련의 결과물처럼 냉철하게 이어진다. 전형적인 추리 해결 구성이라기엔 풍부하고 다양한 많은 분야의 지식들이 빼곡하다.
북유럽 사회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 의학과 과학과 지리 등에 관한 지식정보들은 그 자체로도 무척 재미있고 또한 서늘했다. 인명과 지명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설원이 펼쳐지듯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그린란드에서 익사한 사람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의 수온은 4도 미만이고, 그런 온도에서는 부패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기서는 위 속의 음식물이 발효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발효된 음식물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몸속에 새롭게 부력이 생겨 시체가 바다 표면에 떠올라 해변으로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나도 여러 달 머문 덴마크와 취업을 할 뻔한 그린란드가 덴마크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것도 한편 반갑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뒤로 어떻게 변한 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살아봤다고 많은 것을 깊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린란드인들이 느끼는 폭력성을 고발하는 내용들에 무척 놀랐다.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돈이 덴마크어와 덴마크 문화와 결부되어 있다. 덴마크어를 완전히 터득한 사람은 돈이 되는 자리를 얻는다. 다른 사람들은 생선 가공 공장이나 실업자 수당을 기다리는 줄에 서서 기운을 점점 잃어간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살인율이 전시와 맞먹는다.”
죽음, 음모, 비밀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얼음 벌판에 서 있는 것보다 마음을 더 얼어붙게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의 체온과 의지로 결국엔 다 녹여내어 끝까지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은 북유럽의 푸르스름한 온기처럼도 느껴진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게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장르가 의미가 없어졌다. 가장 빛나는 뚜렷한 것은 문명의 타협 기술을 모르는, 전면적으로 세상과 진실과 마주보고 부딪히는, 용기와 진실의 목소리처럼 보이는 스밀라라는 사람의 존재이다. 본질을 가리키는 직감에 ‘서구 문명’이라는 화려한 장식은 흐려지고 ‘사람으로 타인과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엄중한 원칙만이 서릿발 같다.
분량이 적지도 않지만 마음산책의 책이라서인지 산책하듯 천천히 읽었다. 구조가 복잡하구나 싶었는데 추리 미스터리 장르의 의상을 입은 총체적인 문명 비판 철학서를 만났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Smilla's Sense Of Snow> 음악이 한스 짐머Hans Zimmer! 왜 안 본 걸까?
작가 <Peter Høeg>의 인터뷰 자료가 있어 찾아들었다. <We Swim in Language>
https://www.youtube.com/watch?v=ed5Aksk89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