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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지능이다 - 신경과학이 밝힌 더 나은 삶을 사는 기술
자밀 자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1년 4월
평점 :
내용의 시작은 안심이 되고 감동적이었다. 인간의 수천 년의 진화를 거쳐 다른 것도 아니고 ‘공감 능력’을 발달시켰다는 것이. 물론 전혀 다른 진화를 택한 사피엔스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협력하는 일로는 세계 챔피언’이라고 한다. 있는 힘껏 협력해서 살만한 환경을 망쳤지만, 한편 다시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더 긴 생존을 도모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온라인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에 관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사실은 우리가 경멸하는 이데올로기처럼, 그들에 관해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가올 기회도 갖기 전에 이미 적이다. (...) 어떤 면에서 공감은 이미 파괴되었다.”
내 경험과는 너무 다른 내용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적 경험을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정말 그렇다면 나는 운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엄청나게 좋은 멋진 이들을 만났고 만나는 중이다.
“공감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 자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자원이나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혜택을 자신에게서 박탈하는 일이다. (...) 외로운 사람들의 태도를 이끈 동기는 착각의 결과였다. 남들에게 공감하면 자신이 압도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신에게 더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처지가 더 악화된 것이다.”
눈치가 없고 촉도 없고 공감 능력이 크지도 않다. 의사소통은 언어가 가장 정확하고 쉽고 하지 말라는 짓을 안 하는 것은 쾌락과 대가를 재빨리 계산하여 선택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정한 한편 통렬한 일상의 진면목을 전해 주는 글을 쓰는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난로 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기분이다. 자, 독서의 시작은 이랬는데...!
정신을 좀 더 차리고 보니 이 책은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된 논문이었다. 출처 논문의 목록도 방대하고, 부록 a에서 ‘공감’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니 먼저 살펴보시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부록 b에는 여러 주장과 증거들에 대해 평을 덧붙인 내용들이 담겼다. 본문을 먼저 읽으시는 것도 좋고, 주장들을 살펴보시고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 읽으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산력이 늘고 교육과 문화가 확대되었으니, 먹고 살기 바빠서 못하던 공감기능도 더욱 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은 내 오판이었다.
충격적이게도…… 40년간 심리학자들이 수만 명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공감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공감은 꾸준히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감소세는 더 심해져서 1979년과 비교하면 2009년 사람들의 공감 능력은 75%나 떨어졌다고 한다.
2006년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연설문 내용처럼, 인류는 공감 부족보다는 재정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살았다. 더 나아가 공감을 가로막는 문화, 즉 ‘이기적 충동을 너무 자주 부추기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타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공감 능력을 요구 받는 사람들, 공감 피로가 지나쳐서 기진맥진하거나 무너지는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염려를 깊이 공감하며 읽고 새롭게 배웠다.
공감을 선택할 수도 없고 미러링도 심한 돌봄 일을 담당하는 이들이 그 일을 오래 덜 지치고 하기 위해 감정 연결을 끊는 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혼재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모두가 경험하며 사는 문제... 공감마저 피로사회의 구성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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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 어쩌면 1년 뒤라도, 세상은 더 야박한 곳이 될 수도 있고, 더 친절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는 더 파괴될 수도 있고, 회복을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들이 우리를 잔인하거나 냉담하게 대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두 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택하는 방향과 우리의 집단적 운명은 각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결단하는 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더 친절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 38
“태고부터 존재해온 형식의 공감은 자기보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자녀를 보살피는 것은 그들이 우리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부족을 염려하는 건 그들이 존속과 섹스와 안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도 못할 미래세대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다윈주의가 말하는 우리의 충동에 어긋난다. 하지만 (...) 그런 마음을 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실시간으로 우리의 공감을 진화시켜 더욱 크고 지속적인 무언가로 키워내게 될 것이다.” 382
“의도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사는 편이 더 쉽다. 보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을 향해 새로운 종류의 공감을 키우는 일에는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점점 증가하는 잔인함과 고립에 직면하여 지금 우리는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쉬운 일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우리가 한 선택들의 총합이 미래를 창조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