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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은 핵인싸 - 21세기 훈장님의 인생수업!
강경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2월
평점 :
내게는 두 분의 훈장님이 계시다. 한 분은 어릴 적 천자문을 처음 배우던 분이셨다. 동몽선습(童蒙先習)부터 읽어라 하셨는데, 아이 동자가 들어간 책이 내키지 않아 고집을 부렸다. 첫 네 글자, 천지현황(天地玄黃)을 배우고 왜 하늘이 검다고 한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훈장님도 다른 어른들도 당시의 내가 납득할 대답을 해주시 않아 아주 오래 의문이었던 질문으로 기억한다.
다 지난 후에 생각해보면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다. 인간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는 시대를 나는 살아서 우주의 대부분의 암흑물질Dark Matter이고 빛은 어둠의 잠시 부재라는 것을 배웠지만, 옛날 옛적 사람들은 어떻게 우주가 검다는 것을 알았을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감탄을 했다. 다 오해와 오독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 분은 30이 넘어 한국어를 너무 몰라서 좋은 한국어문학을 많이 읽으면 좋았을 것을... 한국어능력시험을 보았다. 하다보니 한자공부도 필요해서 한자능력시험도 보았다.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놀라운 한자강사분을 만날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에너지 레벨과 활용도가 적어도 나의 세 배는 되는 분이었고, 무엇보다 한자 설명이 놀랍도록 재미있었다.
물론 한문은 한자와는 다르다. 한글 자모를 다 안다고 해서 한글 문학 문해가 모두 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서삼경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 이해하는 - 것은 공자의 <논어>이다. 깔끔한 문장, 섬세한 고찰, 비교적 짧고 쉬운 문장. 굳이 비유하자면 친절한 사회과학 서적 같았다. 경력 20년이 넘는 훈장님이 이 책에서 어떤 고문들을 담아 주셨을지 기대하며 즐겁게 읽었다.
삶과 세상을 보는 여러 틀이 있는데 그것들 모두가 내가 살면서 배우고 획득한 내 것들이라 해도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는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가장 설명이 합리적인 하나를 고르자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세상은 인류가 오랜 세월 알아낼 정보들의 짜깁기로 드러난 퍼즐 같다고 생각한다. 이해와 설명 방식은 많을수록 좋다.
그런 점에서 새해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번 공전하는 것뿐이고 그래서는 의미를 찾기 어렵다. 공전주기조차 정확히 365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은 우리가 만들어서 정한 약속일뿐이다. 그럼에도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계기로 삼기로 했다. 지구가 백번을 돌기도 전에 나는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더 큰 숫자조차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사필귀정은 귀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야할 정의이고 미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어야 살아보자고 살아볼만 하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한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원망을 덕으로 보답하는 일은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원망이란 것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남을 탓하는 것일까. 욕하는 것일까. 남을 원망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믿기가 무척 어렵다.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원망 말고 정확히 지적하고 필요하면 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내가 여러 상황에서 곧은 사람, 덕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릴 때 어른들은 무척 멋진 존재들이라고 느꼈다. 모르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확신을 가진 존재. 선생님과 훈장님에 대해서는 더한 신비감이 있어 존경심도 높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어른들이 많으실 거라 믿는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되었을 뿐.
이 책의 저자인 훈장님 이야기를 읽다보니 무척 계획적인 방식으로 살며 많은 독서를 하고 - 새벽 독서 시간이 무릉도원 같은 천국이라고 하심 - 고집스럽던 자신을 잘 알지만 순한 사람으로 살기고 결심하고 낮게 스스로를 낮추는 분으로 느껴진다. 높은 뜻은 없고 에너지와 시간이 늘 모자라고 아까워서 가능한 갈등 상황을 피하려는 나와는 동기가 사뭇 달라 부럽다.
<중용>에는 앎의 세 단계가 나온다.
“첫 번째 단계는 성인과 같이 배우지 않고도 태어나면서부터 깨닫는 사람인데 이를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위인들처럼 배워서 앎에 이르는 사람이다. 이를 학이지지(學而知之)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고생하면서 공부한 끝에 앎에 이르는 사람을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한다.”
지혜를 얻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첫째 방법은 사색에 의한 것으로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모방으로 가장 쉬우나 만족스럽지 못한 방법이다. 세 번째는 경험을 통해 얻는 방법으로 가장 어려운 것이다.”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앎과 지혜를 고래로부터 분리해서 인식했다는 것이 흥미롭고 유용한데... 안다고 아는 대로 살 수 없는 것이 늘 아쉽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