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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평점 :
2011년부터 쓴 여러 형식의 글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읽었다. 문학을 현실의 대피소로 여기는 오래된 버릇으로 현실과의 거리감을 넓게 가졌다가, 말미에 이르러 날짜를 보고 흠칫 놀라고 만다. 이 책은 근 십년간의 시간을 문장들로 독자를 끌어와 현실에 데려다 놓은 셈이다.
10대 후반 행동주의자로서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이제 스무 살인데 야생으로 향해 자발적 고립을 택하던 저자는, 그 덕분에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며 세상 속에서 예술을 통해 저항하고 회복하는 방식을 주요 관심사로 두게 된다.
소외와 차별이 한 편에 있다면, 저항과 참여와 연대가 다른 편에 있다. 어울려 사는 일은 수많은 갈등을 야기하지만 그것 이외에 고갈되지 않는 행복감을 유지할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런 것이 삶의 정체이므로 저자가 만난 예술가들의 삶에 어떤 불행에 번져있더라도, 저항함으로써 희망하는 공기를 사라지지 않는다.
작품을 먼저 만나 이름만 외운 작가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았는지 견뎌낸 고통과 괴로움의 정면이 무엇인지 몰랐으니, 작품 속 짙은 불안과 필사적인 쓰기도 창작활동이라고 소재려니 했다.
예술가란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는 이들이다. 내부의 고독과 관계 속의 고독을 모두 싸 안고 불안한 순간들을 견뎌내며 작품으로 말하는 이들이다. 계산이 없으니 때론 과하게, 때론 과민하게 반응하고 역풍을 맞거나 거부당하면 그만 고립되고 만다.
현대의 사이버공간은 마치 그런 공사 구분의 삶을 내보이되 충분히 안전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물성적 친밀감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접촉을 유예하는 것으로 지극한 고독에 빠지는 것 위험 역시 미뤄두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말하던, 세상, 사람, 자유, 사랑, 관계 등등을 간단하고 거칠게 정리해보았다. 왜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고 얘기해볼 기회가 이토록 적은지도 고민해보았다.
저항의 행위로서 예술을 한다고 해서 사회 공동체에 대한 필요와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은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폭력에 맞서 공동체 사회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애써 드러내어 보여주는 이들이다.
시선도 감성도 분명 예민하다. 그래서 더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세상의 모습들이 있고, 그것이 스스로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일도 빈번하지만, 그래서 더 예술 활동에 몰입하게 되는 동력으로 삼기도 한다. 의지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필연처럼 흘러간다가 맞는 듯하다.
다 알지 못해서 섭섭하고, 반가워서 행복한 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길어져서 즐거웠다. 만난 예술가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모든 예술가들이 친하게 느껴졌다. 급기야 ‘당신도 그렇다고 말해줘’에 이르자 판단이 불필요한 절친이 된 양 ‘물론 그렇지요’라고 대답하고 싶어졌다.
온갖 어려운 문제들,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져온 혹은 새로 추가된 갖가지 문제들을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 하나로 대신 깊이 고민해주는 감사한 이들이다. 글, 그림, 영상, 이미지, 음악…… 속 인종, 성소수자, 여성, 거의 모든 약자들의 차별, 디아스포라의 삶과 노동, 격변하는 기후,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철저히 이익을 좇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회오리바람…….
내가 예술을 위로나 도피처로 삼은 일은 크게 어리석은 낭비였다. 예술로 인해 삶 자체를 확장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예술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세상을 사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들의 상상력도 함께 따라온다.
시대와 역사와 개인의 인생사를 막론하고 다가올 인생은 제압할 수 없다.
마치 세상에 빛과 어둠이 깔리는 것처럼.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는 활기찬 상상력과 함께 그 빛과 어둠을 넘나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