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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고 나는 의학자가 되었다 -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문을 연 여성 의학자의 이야기
아니타 코스.예르겐 옐스타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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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자 연구원이자 딸로서 지켜보고 자라고 연구한 이 기록은 저자의 가족 2대사이면서, 해당 질환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 이르는 특이하고 귀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후 어머니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 관절염이 발병하여 고통 받으며 살다가 저자가 16세가 되는 해 돌아가셨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질환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평생 본 저자는 의학자의 삶을 선택했다.
“몸이 자기 자신을 공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가면역질환(autoimmune)이라 부른다. (...) 면역계가 ‘자기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 이런 병은 아주 많다.”
그러니까 싸워서 이길 수 없는 병이다. 적을 죽이면 내가 죽는다. 면역 체계가 혼동을 일으키는 것인데, 공격법, 부위, 종류가 너무 많아서 대응이 불가능하다. 미국 자가면역질환협회의 목록에 올라와 있는 질환은 140가지가 넘는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내 면역체계는 과민방응을 다양하게 일으킨다. 그 중 하나는 햇빛 알레르기다. 그럴 거면 뱀파이어라도 되면 좋으련만. 어릴 적부터 여름이 시작되면 떨렸다. 맨 살에 그 해 첫 여름 볕이 닿으면 바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어릴 적엔 울면서 동네 의사선생님께 갔다. 왔구나 하시며 매번 머리를 쓰담하곤 주사 처방을 하셨는데 병원을 나올 때쯤엔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3년 전에 96세로 소천하셨다. 평생을 뵌 분이라 문상 중에 몹시 서러웠다.
나는 주사도 약도 구할 수 있지만, 자가면역질환은 치료법이 없다. 원작 집필은 2018년인데 그때 당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아무도 면역계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치료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가능서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을 끼얹어 불꽃을 누그러뜨리듯이 코르티솔로 염증을 진정시키는 필립 헨치의 치료법뿐이었다.”
희귀질환은 희귀하니 당사자나 주변인이 아니면 알기가 어렵다. 세상에 가장 막막한 순간이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모르는 병을 치료하러 다녀야할 때가 아닐까. 검사로 찾을 수 없는 질환을 가진 환자는 잘못하면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희귀질환을 가진 이들은 서로가 정보를 나누며 자가 주의하는 방법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전혀 모르는 의사가 쓰면 안되는 약을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는 사람에 따라 경중은 다르지만 부작용도 거세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거짓말처럼 말끔해져 침대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요.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 같아요.”
“이런 종류의 고용량 치료는 사람들을 잠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응급치료다. 효과는 고작 몇 달 정도 지속되고, 불편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아주 달콤한 쾌락 같은 거라고 하더군요. 더 원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우리 환자들은 항상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요. 그런데 롤러코스터가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할 수가 없는 거죠.”
투병이란 말 대신 치병이란 말을 사용하자는 책을 읽었다. 격렬한 전투를 생사를 걸고 치르는 대신, 병을 달래가며 사는 것이다. 누군가는 완치도 되고 완쾌도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완화치료를 목표로 견딘다. 부디 정확한 원인 규명과 부작용이 적은 치료법이 발표되길 바란다. 학계의 파워게임에 발표가 늦어진다거나 무시되지 않기를.
단지 치료와 신약개발에만 집중하는 내용이 아닌데 쓰다 보니 흐름이 이렇다. 흥미로운 내용 중에는 인간의 면역계와 성호르몬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번식 후 생존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생명유지 수단을 없애도록 진화했다니, 자연은 자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