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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오늘은 20세기에 만난 분들을 책으로나마 다시 만나 다시 배워보는 그런 날인가 합니다. 학자로서의 활동과 저작과 강연을 꾸준히 이어오시는 분이라 늘 접한 주제 같기도 하지만 쉬웠던 적도 없습니다. 이번 창작과 비평 가을호 담론을 읽어 보았는데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단행본을 읽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도움을 다 찾아봅니다.
https://magazine.changbi.com/201230/?cat=2466 (칼럼)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20459.html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oeb2rAVHaso (간담회)
근대와 근대성에 대해 정의 내리시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그로부터 출발한 한국 사회의 이중과제론, 즉 적응과 극복을 추구하자는 꾸준한 논의를 다시 처음으로 만납니다. 사유의 출발이기고 한 수준 높은 추상적 담론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가 특정 지역과 사회가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인류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현실에서 이를 다루는 담론이라 전체 그림을 보려면 고공으로 추상으로 높이 올라가볼 수밖에 없습니다.
(...)
세워주지 않는 저 기차에 우리 모두가 이미 타고 있다
(...)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우리는
몸을 던져 연료가 되는 자들이다
(...)
저 기차가 왜 우리에게 있을까 아무도 묻지 않을 만큼
우리는 내릴 수 없는 기차에 타고 있다
<기차에 대해서> 백무산
629세대가 있었다면 우리는 촛불세대라 불릴 수도 있겠지요. 개헌을 했어야 새로운 출발이 되었을 것인데, 아직도 1987년 헌법을 고치질 못했으니, 아무리 법이 가장 나중에 마지못해 바뀌는 분야라고해도 참 비동시성의 노골적인 괴리이다... 싶습니다.
여전한 분단 상황, 노동 안전, 성차별, 날선 혐오, 기세등등한 적폐 세력, 기막힌 수준저하를 보이는 언론 개혁, 정체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검찰 세력 등등, 산재한 문제들은 전 방위적입니다. 게다가 판데믹, 기후위기, 환경 파괴로 인한 답례가 거세게 돌아오는 현실입니다.
이전에 많이도 회자되었지만 별로 잘 실천하지는 못했던 지구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Think globally, act locally이 삶의 방식이 되어가는, 되어야하는 여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규모를 줄이고, 욕망의 크기를 지구가 수용 가능한 용량 안으로 줄이는 것 말고 대안을 없습니다.” 라는 지적은 누구나 수긍함직한 상식이다. 이 작업이 개개인의 작은 실천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그러나 (...) 개인의 친환경적 실천이 아무리 성실하더라도 (...) 석탄발전소 하나를 폐쇄하거나 새로 못 짓게 만드는 데 비하면 그 성과가 미미한 게 엄연한 사실이다. (...) 트럼프의 재산을 막아낸 일이 석탄발전소 몇기를 줄이는 행동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 또한 분명하다. (...) 미국이 빠리기후협정에 복귀하고 반환경정책을 대폭 줄이더라도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사실과 현실만 더 정확히 분석하다보면 무척 허망하고 기운이 자꾸 빠집니다. 회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태도가 오히려 합리적인 의심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불교는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을까> 데이비드 로이 녹색평론 2020년 3-4월호 152면
기후위기를 막고자 하는 이들이 체제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고 결연하게 설명해주신 부분은 마음이 단단해지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여러 이론적 배경이 되는 사상들을 깊이 내용 있게 잘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다시금 역사를 짚어보는 일은 우리가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 받고 잠시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시간이라 좋습니다.
더 잘하지 못해 속상한 것, 더 빨리 바꾸고 싶은데 답답한 것,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결과로 불안한 것,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보게 됩니다. 조금 안심이 됩니다.
몹시 추웠던 겨울 밤, 23번의 집회에 모두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때 반대했던 것, 바랐던 것, 상상했던 것, 꿈꿨던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87세대들이 지난하고 고단하게 애쓰며 살며 때로 실망하고 부정하고 이탈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세월을 살아가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그때는 이런 세상을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참 많이 바뀌었다.” 호호 다 늙어서 호기롭게 “세상 참 좋아졌다!” 그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