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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지금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도 불리지만, 어쨌든 나는 국가 간, 인종 간, 민족 간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이다. 전쟁이 없는 환경이 기본 값이라고 여기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았는데, 역사를 봐도 현실을 봐도 전쟁이 사라진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쟁 선포를 하고 포로규약을 지키고 시작일과 종전일이 명확한 전쟁들 이외에도 삶의 많은 영역들이 전투태세를 방불해 하는 곳들도 아주 많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에 이렇게 많은 군사주의적 표현들이 생생할 리가 없다.
한 때 그런 표현을 제외시켜보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으나, 삶은 고군분투, 악전고투, 각개전투를 벌여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나는 목표를 조준하거나 겨냥하는 태도와 집중을 요구받았다.
자신의 전투를 치르는 일이라면, 명분이 확실한 전쟁이라면 놀랍게도 아주 드물게 솔직한 대결 상황일 수 있다. 가장 악랄한 방식은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대리전을 시키는 짓거리다.
당시 세르비아군에게 내려진 명령은, “스레브레니차 거주민들에게 생존의 희망도 느낄 수 없도록 불안한 상황을 제공할 것!”이었다. 1984년 제주도의 토벌군에게 내려진 명령은, “모조리 다 쓸어버려라”였다.
희생이 필요 없는 안전지대에 머무는 이들, 전쟁은 권력과 자본과 이익 수단을 가진 이들에게 호기로 작용하고 이익을 남긴다. 영문을 모른 채 상대방을 미워하고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하고 혹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은 동원된 피해자들뿐이다.
“살인마들이 정당성을 주장하는 걸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나. 그런 자들의 변명을 지켜보고 있어야 되다니.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되는 거 아니야? 그들에게는 언제 한번 마이크를 줘봤냐고.”
가정폭력의 소식을 거의 매일 듣고,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분들의 소식도 계속해서 듣고, 바이러스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도 매일 확인하고, 거짓말과 혐오와 갈라치기로 누가 망하든 누가 죽든 권력을 잡아보자는 문명화한 전투 소식도 듣는다. 그리고 담요와 옷을 보내 도우려던 타국에서 산 채로 불 태워 죽임 당한 이들의 소식도 듣는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진실을 법정에서 가려보겠다는 건데, 애초에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학살자들에게 민주적인 법 절차라니, 이럴 땐 민주주의에 회의를 느껴.”
제주의 학살자도 광주의 학살자도 편안하게 장수하다 편안하게 죽은 기막힌 현실을 씹으며 뱉으며... 제주 4.3.의 직접적인 피해자의 후손이자 유족인 오랜 지인과 함께 읽었다. 무섭고 분하고 아팠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는 사과도 용서도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섣부른 화해나 용서는, 제스처일 뿐이야. 정작 가해자들은 침묵하거나 발뺌만 하고 있는데 (...)”
내전이란 용어는 올바르지도 정확하지도 않는 표현이다. 두 세력이 힘을 겨루기 위해 전쟁을 발발한 것이 아니다. 빌미는 이유는 핑계는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세르비아에서도 제주도에서도. 종교와 정치의 외피를 쓴 근거도 없는 정체성들. 학살을 위한 변명은 얼마나 엉터리이든 비겁하든 비극적으로 잘 작동했다.
“국가폭력이라니, 나는 그 말도 받아들일 수 없다. 때릴 수도, 침을 뱉을 수도, 그가 가진 꿈과 사랑을 짓밟고 망가뜨릴 수도 없는 국가가 가해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원한은 어디를 향해야 한단 말이냐.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의 설계란 말이냐.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극단의 고독이 나를 집어 삼켰다. 그게 암 덩어리가 되었겠지.“
발칸 반도를 피로 적신 비극도 제주를 피로 덮은 학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계와 계급과 빈부가 있는 모든 곳에는 국경으로 가를 수 없는 상처들이 새겨져 있다. 남편은 총에 맞아 죽고 아내는 집단성폭행을 당한 후 태어난 톰, 제주4.3 평화공원의 각명비에 태아로, 신생아로, 이름도 생기기 전에 살해당한 어린 생명들, 아무도 가리지 않는 살해를 명령하는 종교와 이념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 제주 4.3 학살: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자행되었다.
** 세르비아/발칸반도의 학살: 강간 캠프까지 만들어 무슬림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하고 수용소에 감금했다는 증언도 있다.
나중을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는데, 나중에, 나중에, 라는 답변만 들린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