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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철학하기 - 소유에서 존재로, 넘버원에서 온리원으로, 진리에서 일상으로
김광식 지음 / 김영사 / 2021년 11월
평점 :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보신 분들은 내용이 한 가득, 꽈악 들어차있다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알아보는 상징은 이해가 되니 반갑고 감동이고 모르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상징 역시 신기하게 즐겨도 무방하다.
언어가 사유의 방식이고 의사표현의 주된 도구라면 그 언어로 이루어진 노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BTS는 그런 점에서 - 내 생각이지만 - 자신들이 들려주려는 주제를 노래가사로 쉽게 소비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진지한 사람을 벌레로 호명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메시지를 오랜 세월 잘 듣고 심지어 좋아하는 문화적 반응이 있다는 것이 기성세대인 나로서는 뜻밖의 기쁜 감동일 때가 있다.
그렇다고 본격, BTS 노래철학을 탐구해볼 생각은 못 했는데, 글을 쓰신 김광식 교수도 대단하시고 출간한 김영사도 멋지다. 그런데 이 책 독서연령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BTS보다 다른 그룹을 좋아하던 우리 집 십 대들도 읽을 수 있는 것 맞는지.
뮤직비디오는 일단 모두 감상이 가능하지만 관련 철학은 다 알 수 없다. 완전히 낯설지 않은 몇 가지만 문해력 낮은 감상을 섞어 소개한다. 무척 방어적인 이름이지만 무척 도전적인 음악을 하는 이들에 대한 철학,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었다!
Track 1. BTS vs 니체 / 피 땀 눈물과 초인의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hmE9f-TEutc
“‘자기 넘어섬’은 자기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고, 자기를 내리는 동시에 자기를 올리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를 부정해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고, 자기를 내려 자기를 올리는 것이다. 상승을 위한 몰락이고, 창조를 위한 파괴이다.”
두 달 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해설서를 읽었는데 그새 손실이 크다. “생명은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가는 존재라는 것” 그 의지가 힘에의 의지라는 것, 창조를 위해 낡은 것을 먼저 파괴해야 하는 끝없는 자기극복의 과정 정도는 기억이 난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 깊이 공감하기에 좋은 음악이자 철학적 지침이다.
이것이 삶이던가.
좋다. 다시 한 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Track 3. BTS vs 프롬 / Dunamite 외 존재의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gdZLi9oWNZg
지난달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읽기‘를 읽었다 - 일단 읽기는 했다. 20년 전보단 느긋하게 이해한 척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다 오독일 수 있지만. 그래서 또 다른 프랑크푸르트학파인 에리히 프롬의 철학이 <다이너마이트>와 어떤 접점들을 이루는지 정독해본다.
“사회 구조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성격과 성향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이 지니는 소유 지향의 성향을 존재 지향의 성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프롬에 따르면 소비 지향은 소유 지향과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해 소비하기 때문이다. (...) 존재를 지향하는 이는 ‘나는 행위하거나 체험하거나 경험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어떻게 사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그러니 폭파! 스스로를 파괴하며 빛나는 삶을 살아보라...
Track 4. BTS vs 하버마스 / Am I Wrong 과 소통의 철학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은 내가 가장 사랑한 타인이 전공했고, 가장 유쾌한 친구도 전공한 철학이다. 그래서 무척 익숙하지만 아는 바가 없다. 내가 갈 길이 이과 전문직이라고 믿기 전의 시절로 돌아가면 의사소통과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
하버마스는 왜곡되지 않고 억압받지 않으며,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의사소통으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시간으로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언론이 병들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왜곡이 판치는 사회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병든 사회, 병든 사람들은 ‘돈’되는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부자 되게 해준다는 이를 선출했고 또 반복될 지도 모를 일이다.
Track 9. BTS vs 롤스 / 봄날과 정의의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xEeFrLSkMm8
봄날은... 작품을 그냥 보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무지의 베일’이라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이해하지만, 땅에 붙어사는 사람들을 고공 관찰하듯 말끔하게 바라보는 존 롤즈의 시선이 나는 20여 년 전에도 불편했다. 그렇다고 롤즈의 <정의론>을 무척 잘 알아서 하는 평은 아니니 넌 그런가보다... 하시길.
Track 10. BTS vs 로티 /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아이러니의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XsX3ATc3FbA
BTS의 음악과 로티의 만남은 마음이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바꾼 것이듯, 세상은 아무 말이 없고 말하는 것은 우리들이라는 것.’ 그리고 유일한 생존법은 연대라는 것을 글로 만나 기쁘다.
Track 12. BTS vs 버틀러 / 상남자와 젠더의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4XyPdnTz_Q0
한국에는 주디스 버틀러 전문가들이 엄청 많다. 전혀 몰랐다가 EBS 특강에 수백 개의 분석비판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다. 친구가 권할 때 나도 공부 좀 해둘 것을...
그 정도로 뇌분석에 다름 아닌 수준 - 나는 당신이 어떤 페미 음모를 획책하는지 다 알고 있다 - 은 무리지만, 섹스(생물학적 성)도 젠더(사회적 성)도 본질적으로 구별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열심히 읽었다.
“모든 성 정체성은 규범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 담론에 따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 여자는 없다.”
1세대가 남성과 같은 권리 보장을, 2세대 - 보부아르로 대표되는 - 가 젠더 운동 - 사회적 성 정체성 추구 -을 통해 여성의 젠더를 공동체의 이상으로 삼아 실현하려 했다면, 3세대 - 주디스 버틀러로 대표되는 - 는 퀴어주의queerism, 탈양성주의를 추구한다. 여성이라는 개념을 허물고 넘어서자는.
소개 못한 철학자들이 더 많다.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재밌게 즐겁게 만나시길 바란다.